[시선뉴스 이승재] 지난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 이 영화는 자연 임신이 아닌 인공수정으로만 자식을 출산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회를 그려낸 공상과학영화다. 불과 20년 전에는 이런 세상을 영화 속 판타지 세계에서만 만나볼 거라 생각했지만, 2016년 현재에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가 가위’.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나 식물의 세포에서 특정 유전자만 골라 잘라내는 것으로 유전자 편집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리보핵산을 기반으로 한 효소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카스9’이라는 단백질 효소가 DNA염기서열 부위를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크리스퍼는 외부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기억해 빠르게 제거하는 박테리아의 원리를 이용한다.

▲ 출처 / 픽사베이

유전가 가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2년이었다. 그러나 1,2세대의 유전자 가위는 단백질을 이용해 유전자를 찾아내고 유전자 염기서열을 잘라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유전자를 자르는데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제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RNA 효소를 이용해 지난 기술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찾아내고 잘라낼 수 있게 됐다. 또한 과거의 기술은 한 번 이용할 때 비용은 약 3천만 원 정도였다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한 번 이용에 약 3만 6천 원 정도로 비용도 훨씬 저렴해졌다.

이렇게 개발된 유전자 가위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농업 분야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유행성 논란을 줄여줄 수 있다. 현재 만들고 있는 GMO(유전자조작식물)은 식물에 외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삽입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수백, 수천 개의 외부 유전자가 삽입돼 안전성의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게 되면 외부 유전자 걱정 없이 도달하고자 하는 DNA를 찾아낼 수 있고, 그 DNA를 변형시킬 수 있게 함으로써 GMO의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또한 동물연구에도 활용되면서 품종 개량과 멸종동물 복원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한 연구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돼지의 감염과 관련한 유전자를 흑멧돼지의 유전자로 교체해 아프리카 돼지의 열병을 고치고, 바이러스성 질환에 강한 돼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는 19세기 멸종된 여행비둘기를 부활시키기 위해 박물관에 보관된 여행비둘기의 DNA와 현대 비둘기의 DNA를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인간의 질병 치료에도 굉장히 큰 발전을 가져왔다. 지난 4월에 중국 광저우 의대에서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를 발생시키는 HIV바이러스에 내성을 갖는 배아를 만들었다. 아직 장기간의 추적이 필요하지만 치료법이 상용화된다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심어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도 활발해지면서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과학계는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에 대한 우려도 분명 존재한다. 중국과 영국은 이 기술을 활용해 인간 배아 연구에 나서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계속해서 연구 중인 이 기술은 정확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100% 확실하게 유전자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퍼 가위를 인간 배아에 적용했을 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 배아 연구는 생명 윤리를 거스른다며 인간 유전자 교정 국제 정상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이 중국의 맞춤형 아기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분명 우리 생활에 분명 큰 도움을 줄 기술이다. 그러나 그에 버금가는 문제가 일으켜 질 수도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미래에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줘 유토피아를 만들지, <가타카>에서처럼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낼지는 크리스퍼 유전자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술 활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분별한 신기술의 도입과 활용보다는 냉정하게 이 기술의 효과와 부작용을 바라보고, 어디까지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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