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연선]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 출생-사망 / 1820.5.12 ~ 1910.8.13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의학

▶ 별칭 / 광명의 천사, 백의의 천사, 등불을 든 천사

때로는 의사보다 환자와 더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간호사다. 그러나 이런 간호사도 과거에는 제대로 된 체계가 잡혀있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간호사의 틀을 잡은 사람은 바로 백의천사라고 불리는 ‘나이팅게일’이다. 나이팅게일은 "간호란 질병을 간호하는 것이 아니고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진정한 간호사는 아픈 사람의 육체와 감정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부유했던 어린 시절,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의 부모님은 피렌체 여행 중, 나이팅게일을 둘째 딸로 맞이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나이팅게일은 어려서부터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지리학 등을 배웠다. 사실 당시 간호사라는 직업이 좋은 대접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방법을 알았던 탓일까. 나이팅게일은 어려서부터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고 돕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던 어느 날 나이팅게일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렇게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이팅게일은 간호사 양성소에 들어가 31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간호사의 일을 시작한다.

- 크림전쟁에서의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이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곳이 바로 크림전쟁이었다. 당시 크림전쟁에서는 페스트 환자 13,000여 명이 발생했고 그 중 절반은 죽게 된다. 이를 접한 나이팅게일은 큰 충격을 받고 35명의 간호사들과 함께 이스탄불 위스키다르로 향했다.

그 곳에서 나이팅게일은 야전병원장으로 일하며 많은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당시 열악한 병원 환경과 진료 체계가 없어 많은 난항을 겪는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은 정부와 군인, 의사들과 함께 야전병원 운영과 진료 체계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많은 환자들을 돌보게 됐다. 그 결과 약 6개월 만에 42%의 사망률을 2%로 떨어뜨리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 빅토리아 여왕과 마주한 '나이팅게일'

이에 빅토리아 여왕은 나이팅게일에게 큰 상을 내리기도 했는데, 나이팅게일은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병원과 진료의 체계에 대해 빅토리아 여왕에게 당당히 말을 꺼낸다.

하지만 이는 쉽게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정부나 군부 곳곳에서 많은 반발이 있었고 핑계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팅게일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병원과 진료의 체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을까. 가난과 질병에 대한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게 되면서 의료 시스템과 진료 체계가 잡혀나가기 시작했다.

- 간호사 양성을 위해 힘쓴 '나이팅게일'

나이팅게일은 의료와 진료 체계의 변화를 가져온 것뿐만이 아니다. 크림전쟁 당시 영국에서 만들어진 나이팅게일 기금을 이용해 간호사 양성소를 세우게 된다. 그리고 간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간호학교를 세웠고 간호전문 서적을 내기도 하며 간호 교육에 있어 자신과 같은 진실 되고 실력 있는 간호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다.

의사보다 환자와 더 가깝게 지내며 환자의 병을 돌보는 일을 하는 간호사. 그리고 그 간호사의 체계를 잡고 진정한 간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나이팅게일. 그녀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닌 진정으로 환자와 환자의 병을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