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승재] ‘깐느 박’, 박찬욱 감독의 별명이다. 2004년 <올드보이>로 제 5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그로부터 5년 뒤인 2009년 <박쥐>로 또 한 번 칸에 섰던 그가 또 다시 칸의 부름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제 69회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받은 것이다.

지난 5월 14일 <아가씨>가 상영됐고, 관객들의 대답은 ‘기립 박수’였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칸에서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힘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 출처 / 네이버 무비토크 캡쳐

박찬욱 감독은 어릴 적 자신이 영화감독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우선 어렸을 적부터 미술을 관심이 많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술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고등학교 시절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막연하게 떠올렸지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본인의 성격 탓에 영화감독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라고 밝혔다. 그 후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고 오히려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도서관에서 영화와 관련된 책을 챙겨보고,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은 그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 출처 / <현기증> 캡쳐

그렇게 충무로로 향한 박찬욱 감독은 두 세편의 영화를 거친 뒤 잠시 현장을 떠나게 된다. 전근대적인 제작 방식이 지배하던 당시 충무로는 젊은 청년들이 버티기엔 힘든 환경이었다. 이후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하던 그는 우연하게 데뷔작을 찍게 된다. 1990년대 초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확보를 위해 영화 산업에 진출하던 때, 박찬욱 감독은 1억 원 안팎의 제작비로 영화 제작을 제안 받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이다. 하지만 데뷔작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두 번째 작품을 하기 까지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 출처 / <달은 해가 꾸는 꿈이다.> 캡쳐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그 시기를 감독이 아닌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게 된다. 영화 평론가로 데뷔해 감독이 된 것이 아니라 감독에서 평론가가 된 희귀 케이스다. 영화 평론가로의 활동에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미술적 영향과 대학 때 배운 철학이 한몫했다. 그리고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이훈 감독은 박찬욱 감독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훈 감독의 영화를 고르는 안목은 박찬욱 감독의 지평을 넓혀줬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두 번째 영화 <삼인조>를 제작하게 된다. 첫 번째 영화의 실패를 경험한 그는 ‘대중’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었고, 그런 압박감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영화 <삼인조>는 대중에게 점점 맞춰지면서 본래 생각했던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 출처 / <공동경비구역 JSA> 캡쳐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앞선 두 영화의 실패를 통해서도 자신감을 잃지는 않았다. 마치 이제는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알게 된 것처럼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자신감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2000년에 개봉된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그 뒤로 이어진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등 복수 3부작은 박찬욱 감독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새롭게 시도한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찬욱 감독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며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주기도 했다.

▲ 출처 / 친절한 금자씨 프로모션 사진

<공동경비구역 JSA>이후 꾸준히 흥행을 유지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에게 <올드보이>이후 조금의 변화가 생긴 점도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와 같이 남성성 짙은 영화를 계속해서 찍다보니 ‘여성성’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제작된 <친절한 금자씨>, <박쥐> 등에선 여성에게 집중하고, 여성의 역할을 부각하는 등 여성성이 짙어졌다. 그리고 이번에 제작된 <아가씨> 또한 그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 캡쳐 / <아가씨> 공식 포스터

실패와 고통을 이겨내며 묵묵히 내공을 쌓고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박찬욱 감독에게, 칸의 부름과 기립박수는 그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은 상당부분 ‘운’이라며 겸손함을 내비친다. 그리고 시상식보다는 시사회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대중에게 그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했다. 이번<아가씨>와 향후 공개될 그의 영화들이 앞으로 우리에게 또 어떤 즐거움과 메시지를 전달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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