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준비를 시작해서는 이미 늦다. 행운이 미소 짓기 전에 준비를 갖추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출범 역시 보름이 넘었다.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의 잘, 잘못을 따지기는 아직 이르지만, 이 시점에서 그 기조에 대해 중간 평가하고 박근혜 차기 정권이 유념해야 할 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수위원회가 지금까지 발표한 것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은 정부 조직과 청와대 조직에 대한 개편안이다. 정부 조직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미래 전략 부처의 신설과 조정 기능의 강화, 그리고 국민 안전에 대한 중시이다. 청와대 조직은 ‘대통령 보좌’라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인수위원회는 역대 정권들의 인수위원회와는 달리 별 잡음 없이 순항하고 있다. 국가 현안 과제에 대한 인수·인계에 치중하겠다는 자세이다. 일부 언론의 비판과는 달리,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의 행보는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차기 정권에 거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는 큰 편이다. 아직 임기 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양상을 볼 때 적어도 순리에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겨야 할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당 등 야권 진영의 지리멸렬도 박 정권의 초기 안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차기 정권과의 협력과 비판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가 있기 때문에 모처럼 ‘상생의 정치’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 박 당선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감과 카리스마 리더십도 행정부를 이끄는 데 큰 힘이 될 법하다.

   하지만 박근혜 차기 정권이 가는 길에 많은 걸림돌이 나타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먼저 ‘대한민국 대통령의 숙명’이다. 헌법상의 권한과 책임은 ‘제왕적’이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구사할 수 있는 권력은 그리 크지 않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마저도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정책은 야당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새로운 국회법이 곧 발효하면 소수 야당의 반대조차도 물리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권한 이상의 과도한 기대를 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당초의 예상보다는 많은 득표를 했지만, 그래도 절반 가까운 유권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요컨대 야권 성향의 국민들을 껴안지 않고서는 국민 통합은커녕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대선 결과를 굳이 해석하자면 박 당선인더러 ‘안정 속의 개혁’을 해 달라는 국민의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컨대 ‘보체진용(保體進用)’이다. 박 당선인이 약속한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의 실현’은 물론, 야당의 공약 중에서도 합리적인 핵심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에도 여러 과제들이 있지만, 그 핵심은 재벌 기업 혹은 대기업의 독과점 규제와 하청업체와의 공정 거래 확립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를 올바르게 구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재벌기업 혹은 대기업의 저항이 예상된다. 재벌기업 혹은 대기업이 동의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이 병행되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부의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정책도 주목의 대상인데, 재정의 뒷받침이 관건이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도 중요하지만, 부동산과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대기업 노동조합과의 타협이다.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의 전투적인 운동 노선에도 문제가 있지만, 노동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교육비와 주거비 등 턱없이 높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노동조합을 설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 차기 정권은 교육비와 주거비의 절감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노-사-정 중심의 경제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에 대한 사회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차기 정권은 무엇보다도 정치력을 잘 발휘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어려움을 겪은 데는 대통령 스스로 정치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의 폐해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져 정치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여-야 간에도 그렇고, 여당 사이에서도 통치는 있었는지 몰라도 정치는 사실상 없었다. 여론의 풍향에 민감한 여당 지도부의 견해라도 제대로 경청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박 당선인은 정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박 당선인 특유의 원칙주의가 유연한 선택을 방해할 개연성도 있다. 이 점을 늘 의식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는 원칙론에 입각해 있다. 정부와 청와대 조직 개편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각자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취지이다.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기능주의 혹은 관료주의에 대한 위험성 또한 내장하고 있다. 기능주의나 관료주의에 빠져들면 소기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 국정 전반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중요한 것이다. 대통령 본인이 그 역할을 하는 최고 책임자이지만, 대통령 혼자서 할 수가 없다. 국무총리의 인선이 중요한 까닭이다. 대통령 대신에 국정을 일정 정도 통할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각 부처 장관도 마찬가지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국정 전반을 통찰하는 안목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박근혜 차기 정권에도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첫 위기가 왔을 때 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성공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큰 위기 이전에 작은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여기서 어떤 교훈을 찾고 실행을 하는가에 따라 큰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수위원회 인사에서 그런 징후가 있었다. 인사 보안을 유지하려다 충분히 검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가 이루어졌다. 이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 남은 인사에서는 절차적 투명성은 물론, 국민대통합에 맞게 품격과 균형 감각을 구비한 인재들을 발탁해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제왕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데다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고, 구중궁궐인 청와대에서 참모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오판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는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되었고, 이 오만과 독선은 이런 구조에서 나타났다. 바꾸어 말해서 대통령은 장관과 비서관 등 참모들의 의견은 그것대로 존중하되, 여러 채널을 통해 이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두루 청취해야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혹은 보수 진영의 보수 근본주의도 박근혜 차기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가 있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 새누리당 혹은 보수 진영의 지도자라는 점은 잊어야 한다. 현대 정치는 곧 정당 정치이며, 정당 정치는 책임 정치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당적을 탈피할 필요가 없고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당파성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을 어려움에 내몬 것도 보수 진영의 ‘잃어버린 10년’이란 화법이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였던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내 성공 비결은 단지 사람들이 원하는 걸 준 것뿐이다.”라고 했다. 정권의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은 민심에 부응하는 것이다. 대중영합주의에 대해서는 늘 경계해야 하지만, 각계의 생활 현장에서 들려오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만이 성공의 보증 수표를 받을 수 있다. 민심이 두루 반영되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전개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박근혜 차기 정권이 초심을 끝까지 견지하여 5년 후에는 성공한 정권으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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