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디자인 이정선 인턴] ※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4차례의 큰 사화에도 불구하고 사림은 다시 조선의 중앙을 장악하게 된다. 어렵게 중앙을 차지한 그들이었지만 곧 그들 중에서도 또다시 파가 나누어 지면서 붕당을 형성하게 된다.

 

붕당의 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제 및 붕우 관계를 뜻하여 학연을 의미하고 그 학연 중에서도 지역색을 구분했다. 그리고 당은 ‘편당’, ‘파당’의 뜻이 내포되어 있어 좋은 사람은 끌어들이고 싫은 사람은 배척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붕당 정치는 복수의 붕당이 상호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사림의 결집된 공론을 정책에 반영하려 하는 것이다. 이들의 공론은 임진왜란을 겪기 전 까지는 의정부에서 수렴하였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비변사가 이 역할을 대신하였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견제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관직인 3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와 이를 관리하는 이조전랑의 정치적 비중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또한 서원과 향교는 지방 사족의 공론이 형성되는 곳으로서의 입지가 강력하게 되었다.

붕당은 선조 8년인 1575년에 성립되었는데 김효원과 심의겸이 삼사를 관리하는 이조전랑의 임명을 둘러싸고 갈등을 드러내었는데 이 때 동대문쪽에 살던 김효원을 따르는 사람들을 동인, 서대문쪽에 살던 심의겸을 따르는 사람들을 서인으로 부르게 된 것부터 시작되었다.

동인은 신진 사림(젊은 사림)의 환심을 얻는 사람들로 개혁에 적극적이었고 자기 수양에 중심을 두었으며 지배자의 도덕적 절제를 강조했다. 동인을 대표하는 사림으로는 이황, 조식, 서경덕이 있다.

서인은 기성 사림(늙은 사림)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로 개혁에 소극적이었고 백성을 통치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또한 제도의 개혁을 통한 부국안민을 꾀했으며 대표적인 서인으로는 율곡 이이, 기대승, 김인후 등이 있다.

서인인 이이의 제자 정여립은 동인으로 전향하고 진안 죽도에서 대동계를 결성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모반 단체라고 보고 진압군을 파송하였다. 이에 정여립 부자는 자살하고 다수의 동인들이 처형되는 정여립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서인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자는 건의를 했다가 선조에게 미움을 사 서인들이 실각해 버린다. 다시 동인들이 정권을 잡지만 정철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북인으로는 조식과 서경덕이 있었고 남인으로는 이황 유성룡 등이 있었다.

붕당의 취지는 견제와 균형이다. 현재의 정치에도 이는 그대로 적용되어 있지만 본래의 취지보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학파에 이끌려 서로를 배척하는 모습은 굳이 지금까지 물려받지 않았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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