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 양국이 조선시대 때 우리나라와 일본을 연결하던 소식통의 기록물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이 협의를 바탕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선통신사’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 통신사는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전까지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을 지칭하고 정확한 명칭은 ‘통신사’이다. 1404년 조선과 일본 사이가 친밀해지자 조선의 국왕과 일본의 막부 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400명이 넘는 사절단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일본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조선통신사’, 일본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라고 하였다.

조선 이전인 고려 시대에도 명나라와 조선을 오가는 통신사가 존재한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통신사’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고 회례사, 보빙사, 경차관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당시 통신사는 명나라에 동일관계의 국가로서 파견하는 외교 사절로 왜구의 단속 요청, 대장경 증정 등을 주 임무로 삼았다.

그 후 조선시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통신사’는 삼포왜란을 계기로 세종 이후 왕래가 끊겼다. 하지만 선조 때 한반도 침략의 야욕이 가득 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끈질긴 요청으로 다시 왕래하게 되어 다시 파견하게 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을 탐지할 중요한 목적으로 위해 파견되기도 했다.

이렇게 약국간의 소통과 긴장의 기운까지 전달하던 조선 ‘통신사’들의 발자취가 현세에까지 전해지며 관광지로서 또 문화 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까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에는 400년 전 통신사들이 일본에 파견되어 머물던 신궁, 그들의 행적, 들고 왔던 물건, 고서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보존되고 있으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중 조선 통신사가 수도인 도쿄(당시 ‘에도’)에 도달하기 위해 머물었던 주변 지역들에는 특히 많은 기록이 남아있어 한국의의 답사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조선과 일본이 친밀했던 시절 약 1년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400명에 달하는 통신사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한 일본의 대우가 극진했음을 곳곳에서 말해주는데, 조선 통신사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신궁, 기념비 등 환영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 현재에 비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처럼 어떠한 통신 장비도 없던 과거 이웃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소통의 수단이 되어주던 조선통신사. 조선통신사들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소통의 양적발전이 매우 빠른 현시대에 거울로 삼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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