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지난 1월 15일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신영복 교수가 지병인 희귀 피부암으로 사망했다.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서 그의 대표작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신영복은 어떤 사람이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떤 저서일까?

▲ 고(故) 신영복 교수(출처/신영복 홈페이지)

신영복은 1941년생으로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8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이 된다.

통일혁명당 사건은 1968년 통일혁명당의 주도 세력을 검거한 사건으로 통일혁명당은 김종태가 월북해 북한의 지령과 자금을 받고 결성된 혁명 조직이다. 주범이었던 김종태와 김질락, 이문규는 월북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당원 이진영, 오병헌은 68년 4월22일 월북해 교육을 받던 중 통혁당 사건이 터지자 그대로 북한에 머물렀다.

1980년 대전교도소에서 (출처/신영복 홈페이지)

신영복과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내 동아리인 '경제복지회'를 지도했는데 신영복은 통일혁명당의 김질락의 지도를 받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시작한다.

그는 무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했으며 1988년 전향서(사상을 바꾸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된다.

▲ 1988년 출소하는 고(故) 신영복 교수(출처/신영복 홈페이지)

그는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냈던 서신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았는데 이 책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부모님과 형수, 제수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를 엮은 책으로 옥중에서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사소한 일에 대한 감사 등 감옥이라는 삭막한 곳에서 나오기 힘든 감수성과 깊은 명상이 들어있는 책이다.

▲ 고(故) 신영복 교수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공전의 베스트셀러로 등극됐다.

출소 후, 그는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수많은 명저를 집필했다.

특히 ‘처음처럼’이라는 시는 동명의 소주 이름으로 차용되었고 소주 표지에 사용되는 로고 붓글씨 역시 그가 써 주었는데 이 소주가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국내 1, 2위를 다투는 제품이 되었다. 그는 이 소주의 이름을 붓글씨로 써 주었는데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고사해 소주업체는 1억 원을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 신영복체로 큰 인기를 끈 '처음처럼' (출처/소주 처음처럼 로고)

신영복은 획의 굵기와 리듬에 변화가 많은 글씨를 쓰는 것으로 유명해 ‘신영복체’라는 폰트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그의 글씨체로 제작된 현판들이 크게 늘었고 대형 서점들 앞에서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그의 글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에도 신영복체가 쓰였다.

신영복은 2006년 말 정년퇴임하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했지만 2014년 희귀 피부암인 악성 흑색종 진단을 받았고 이 병이 악화되어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 고(故) 신영복 교수(출처/신영복 홈페이지)

무려 20년이라는 옥 생활을 하면서도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주옥같은 저서들과 학생들과의 소통으로 세상을 뜨는 때 까지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신영복 교수. 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저서는 두고두고 우리들에게 큰 감명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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