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 간의 경쟁’이었다는 점이다.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국민 통합을 추구해야 할 박근혜 당선인으로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특별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을 것이다. 국가 정책을 인수·인계하는 인수위원회의 성격에는 다소 맞지 않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박 당선인의 국민통합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세대 간에 표심(票心)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다. 미래 세대로서는 기존의 권위와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 정당보다는 끊임없는 변신과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진보 정당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장·노년층은 이와 정반대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다르고,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달리하는 부동층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미래 세대는 진보 정당을, 기성 세대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제18대 대선은 예상보다는 큰 표의 차이로 승패가 갈렸지만, 선거전 내내 초박빙의 승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영 간의 정면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싸움에서 승패를 좌우한 것은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50대의 높은 투표율이었다.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열광이나 적극적인 지지였다기보다는 야권의 집권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간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투표를 하지 않으려고 한 유권자들도 꽤 있었을 법한데, 결국 투표를 하게 된 것은 야권의 뭔가가 이들을 자극한 탓이 크다.

   요컨대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야권이 잘못해서 정해진 결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불문가지이지만, 자신의 권력이 국리민복을 위한 것임을, 이제는 전 국민의 지도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원회 위원들에게 겸손을 강조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차기 정권에 참여할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들이 이를 얼마나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역대 정권들의 실패는 ‘권력의 사유화’와 대통령 사람들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되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어려운 조건에서 다음 5년의 대한민국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박 당선인의 트레이드마크인 ‘위기관리 능력’을 잘 발휘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관점에서 국사를 다루게 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의 어려움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뒤집겠다는 의욕이 강했는데, 이것이 야권의 저항을 불러들였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린’ 결과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되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거나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더 많이 경청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번 대선에서 야권에 투표한 지도자나 유권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소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과의 건전한 파트너십 형성이다. 야당은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려는 욕구가 강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양자를 엄연히 말해서 경쟁관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통령이 포용력을 가지면 얼마든지 국정의 동반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 당선인의 취약 지대인 미래 세대와의 소통이 절실하다. 미래 세대 중에는 박 당선인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소통이 의미심장하기도 하지만, 미래 세대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동량(棟樑)이기 때문에 더 더욱 그것이 소중하다. 지금의 20대는 대개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1980년이라면 세계적으로 개방화의 물결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2000년 이후에 성인이 되었다. 2000년은 국내적으로 지식정보화가 꽃을 피운 시기이다.

   30대는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출생해서 1990년 이후에 어른이 되었다. 1970년대는 대한민국이 중화학공업 육성을 지렛대로 하여 경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1997년에 터진 외환위기는 급속한 산업화의 후유증이 심각함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 여파는 국가적 부(富)의 축소와 사회 양극화로 귀결되었다. 그 직격탄을 맞은 세대가 바로 30대이다. 또한 1990년대는 인기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대중문화를 바꿔놓았듯이 권위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연대였다.

   이처럼 2,30대는 글로벌화, 개방화, 지식정보화, 다원화, 수평화의 물결에 가장 잘 들어맞는 세대이다. 그래서 이들은 당연히 기성 세대의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와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가정 평화가 위협받는 것도 부모와 아이들의 가치관과 정서 차이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가정이 이러한데, 나머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불만이 많지만 기득권을 가진 쪽에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지 못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워 청년 특유의 도전정신마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12월 29일에 국가경영전략연구회와 함께 ‘신임 대통령에게 바란다.’는 제목으로 대학생 100인 워크숍을 열었다는 기사가 오늘 보도되었다. 분임 토론과 전체 토론을 통해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일 10가지’와 ‘새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 10가지’를 발표했다. 신문 보도대로 대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일자리’ ‘포용’ 그리고 ‘민생정치’였다. 이 키워드는 모든 국민이 염원하는 바이다. 대학생다운 재기가 번득이는 대목이 더러 눈에 띄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도 진하게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핵심적인 희망사항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일’ 가운데 “Best 1이 아닌 Only 1이 되게 해주세요.”이다. “12년 공교육을 받아도 뭘 해야 할지를 모른다. 뭘 잘 할지 알게 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폐단은 제2물결 시대의 특성인 획일적 인간들을 양산하는 교육 패러다임이라는 점이다. 획일적인 틀에 따라 서열화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교육 현실이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이다. 이런 고비용-저효율-비인간화 교육을 혁파하지 못하는 한 선진국으로의 도약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사 자격증 1급을 따 주세요.”이다. 즉 “정권이 바뀌면 역사 교과서가 바뀐다는데, 과거 정부의 공과에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어느 정도는 새 정권의 기조에 맞는 인사와 정책은 불가피하다. 신진대사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면도 있다. 하지만 이전 정권이 했던 일들 중에는 잘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것도 있고, 정권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도 있다. 그 옥석(玉石)을 가리지 않은 채 모두를 불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공약도 잘못됐다면 과감히 ‘수강 철회’해 주세요.”이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우선순위가 달라지면 과감히 미룰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 중에서 “우리 돈을 당겨쓰지 마세요.”가 있다. “범람하는 복지 공약의 재원을 마련하려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누차 지적한 바 있다. 대학생들이 앞으로 닥칠 자신들의 부담을 의식해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대학생 여론을 대변한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표출된 담론의 수준을 볼 때 대한민국의 미래에 서광이 비치고 있음을 느낀다. 이 세대가 가진 당당함과 재기발랄함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권력자 혹은 기득권자 그리고 기성 세대가 미래 세대에 대해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갈 소중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기존의 고정관념과 어떤 힘으로 미래 세대를 누르려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감수성과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하리라.

   미국의 칼럼니스트였던 앨버트 허버드(Elbert Hubbard)는 “어제 한 일이 아직도 대단해 보인다면 오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과거의 성취가 현재의 성취보다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금까지 성공 신화를 써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리는 박 당선인의 예전 위치와는 현격히 다르다. 따라서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원점에서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찰력과 균형 감각이 뛰어난 참모들을 중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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