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판타지스타’란 ‘공을 잡는 것만으로도 관중들을 저절로 환호하게 하는 선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그 칭호가 어울렸던 단 한명의 선수가 있다. 바로 안정환이다.

76년생인 안정환은 서울공업고등학교와 아주대학교를 졸업하고 98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 입단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인 99년 수비수를 농락하는 화려한 플레이로 14골을 넣으며 팀을 K리그 준우승에 올려 K리그 MVP를 받게 된다. 통상적으로 MVP는 우승팀의 선수를 지정하지만, 안정환은 K리그 사상 처음으로 비 우승팀에서 MVP를 받는 선수가 되었다.

▲ 화려한 리즈시절의 미모를 뽐내는 안정환(청춘FC제공)

이렇게 화려한 그의 축구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었어야 했다. 안정환은 이탈리아 리그 세리에A의 AC페루자로 임대이적하면서 한국인 사상 최초로 세리에A에 진출한 선수가 되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맞아 골든골을 성공시키자 경기 직후 AC 페루자의 구단주는 옹졸하게도 그를 방출하겠다는 인터뷰를 해 안정환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이후 인터뷰 내용과는 다르게 임대 이적이었던 안정환을 완전 이적시키려고 하였고 이 과정에서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콘스와 이적료 문제로 분쟁을 겪어 붕 뜬 상태로 있어야 했다. 이 때 일본의 시미즈 에스펄스는 AC 페루자로도 갈 수 없었고 부산으로도 갈 수 없었던 안정환을 유치하는데 성공했고 안정환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J리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2005년 7월 프랑스 르샹피오나의 FC 메스로 이적했고 2006년 1월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MSV 뒤스부르크로 이적했다. 하지만 모두 팀이 최하위를 면치 못하며 강등당해 안정환은 팀들과 계약을 해지해야 했었고 그 후 결국 6개월 정도를 무적선수로 지내야 했다.

그러다 200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되어 7년 만에 K리그로 복귀하였고 2009년에는 중국의 다롄 스더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는 결국 2012년 1월 27일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 잘생긴 외모로 화장품 CF까지 섭렵했다(출처/소망화장품 꽃을 든 남자 CF중)

2002 월드컵 당시 안정환은 찰랑거리는 긴 헤어스타일과 연예인보다 더 잘생긴 외모로 테리우스라는 별명을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축구선수 중에서는 최초로 화장품 cf를 찍었으며 골을 넣었을 때 반지 세레모니를 선보여 반지의 제왕이라는 애칭도 받았다.

▲ 2002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골든골을 넣고 포효하는 안정환(출처/mbc)

안정환은 3번의 월드컵 출전 기록을 보유했으며 최다 골(3골) 보유 기록자다.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2002 월드컵의 안정환은 축구선수의 정점을 찍은 목표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안정환은 현재 K리그 홍보대사 겸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아빠 어디가’, ‘청춘fc’ 등의 예능에 출연하여 친숙하면서도 축구전문가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비록 과거만큼의 꽃 미모는 보기 힘들지만 해설가로서의 안정환, 축구전문가로서의 안정환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운이 좀 더 좋았더라면 월드컵 외의 프로선수로서의 커리어도 엄청난 결과를 낼 수 있었겠지만 그의 가치가 너무 높았던 바람에 구단들의 욕심이 얽히고설켰던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고 할 수 있다.

▲ 청춘FC에서는 축구 전문가로서의 안정환을 보여줘 깊은 공감과 전문성에 감탄했다(출처/KBS)

하지만 그런 부분을 떠나서도 안정환이라는 축구선수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안정환은 현재 우리나라의 축구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피는 사람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존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또 기대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앞으로도 ‘판타지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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