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이호기자] 어른들의 사정으로 전쟁이 났을 때 과연 그 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은 어떤 비난을 받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비난할 부분이 1g이라고 존재하는 것일까? 안전하고 풍요로운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 중 자신의 조국에서도 살 수가 없어 쫓겨난 최악 중에 최악의 상황에 놓여져 있는 아이들을 조롱거리로 삼는 극악한 행태에 전 세계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조너선 하이엄스는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6살짜리의 아이의 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너무나도 절망스럽고 처연한 눈빛의 소녀 사진을 촬영했다.

그런데 일본의 한 만화가는 이 사진을 가지고 전혀 다른 내용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 일본의 네티즌인 하스미 도시코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한 만화 일러스트를 올렸는데, 일러스트의 글귀는 “남의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고 럭셔리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까 난민이 되자”라는 내용이었다.

▲ 처연한 표정의 사진이 어느새 뭔가를 노리는 표정이 되어 있다(출처/세이브더 칠드런, 하스미 페이스북)

전쟁으로 인해 탈출한 난민들이 유럽 등에 구호 요청을 하는 것을 남의 돈으로 호의호식한다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거주할 국가도, 먹을 음식도, 입을 옷도 없이 고향에서마저 떠나야 했던 그들에게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일이 마치 그들이 원해서 그런 상황이 된 것처럼 묘사했다.

특히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며 아무 죄도 없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 만행은 이념이나 사상이 다르다는 것을 십분 감안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극악한 만행이다.

지난 9월, 샤를리 앱도 역시 터키 해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난민꼬마 쿠르디를 조롱했다가 전 세계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들은 아이를 통해 전쟁의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하스미는 한술 더 떠 그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적인 공격’이라고만 할 뿐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만화에 대한 비난은 하스미가 주장하는 정치적인 공격이 아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 점을 비난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해당 만화는 현재 내려졌지만 난민 꼬마의 그런 표정을 보고 무위도식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이는 자신은 안전한 곳에 있고 그들은 매우 위험한 곳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안전의 우월의식’을 느끼게 했기 때문에 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같은 입장이라면 자신이 그렸던 만화를 그리는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인가.

샤를리 앱도는 판매 부수를 노리고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스미 역시 관심을 받고 싶어 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자신이 관심을 받고 싶어서 남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혐오스러운 관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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