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지난 1월 7일(현지시간), 알카에다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해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테러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샤를리 엡도는 테러를 자행하는 이슬람을 겨냥하여 과감한 풍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언론사로 이에 불만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이 샤를리 엡도에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편집장을 비롯한 직원 10명과 경찰 등 12명이 사망했고 프랑스 정부는 파리 전역에 가장 높은 수준의 테러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그리고 이런 폭력사태에 대해 전 세계인들은 희생된 언론인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었다.

▲ 쿠르디를 조롱하여 공분을 사고 있는 샤를리 엡도의 만평(출처/샤를리 엡도)

그런데 그런 샤를리 엡도가 이번엔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유는 피난 중 보트가 전복되어 사망한 3살짜리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를 만평으로 조롱했기 때문이다.

아일란 쿠르디는 터키 해변에서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된 사진이 공개되어 전 세계적으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난민 꼬마다. 이 사진으로 인해 난민을 받는 것을 꺼려하던 국가들도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렇게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쿠르디를 샤를리 앱도는 만평으로 조롱을 했다. 해당 만평에는 '거의 다 왔는데…'라며 해안가에 숨져 있는 쿠르디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그 위에는 ‘햄버거 2개를 1개 가격에'라며 맥도널드를 연상하는 간판이 서 있어 마치 맥도널드를 가기 위해 피난가다 숨진 것처럼 표현했다. 

또한 다른 만평에서는 '기독교인은 물 위를 걷는다'는 말과 한 남성이 물위에 서 있고 '무슬림 아이들은 가라앉는다'는 말과 아이가 물에 거꾸로 박혀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충격을 주었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유럽인들의 비정한 상업주의와 모순된 기독교적 사랑을 꼬집는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인 아이, 그것도 비극적으로 희생된 아이를 소재로 삼은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논란이 되는 만평을 일부러 내놓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샤를리 엡도의 정확한 의도는 그들만이 알겠지만 어찌됐든 이번 사건으로 그들을 옹호하던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린 것은 확실하다.

아무리 언론사가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반은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방종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테러사건은 공공의 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알카에다를 겨냥한 만평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 많은 사람들이 샤를리 엡도를 지지하고 애도했었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는 이번 만평으로 그런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3살짜리 아이가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서 왜 그런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어떤 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안타까운 사건이 과연 샤를리 엡도에게 조롱을 당해야 마땅한 일인가? 이념과 이해를 먼저 따지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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