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최지민]
1945년 8월 15일 온 국민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쏟아져 나와 기쁨의 노래를 부를 때 마을 사람들 모두가 실업자로 전락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의 ‘우토로 마을’이 그곳입니다.

‘우토로에서 살아왔고 우토로에서 죽으리라’

5일 방송된 MBC’무한도전’에서는 ‘배달의 무도’ 특집 세 번째 이야기가 방송되었습니다. 3주에 걸친 방송으로 진행된 이번 특집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외에 거주 중인 한국인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배달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지난 방송에서는 아프리카, 남미, 미국을 거쳐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을 찾았습니다.

▲ (출처/MBC'무한도전'캡처)

일본 교토부 우지 이세탄초 우토로 51번지에 있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마을인 ‘우토로마을’.
그곳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이 집단 합숙을 위해 함바(가건물)를 만들어 생활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우토로 마을은 지대가 낮아 홍수가 나면 침수가 되는 땅으로 하수도도 없어 원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면서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는 바람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어떠한 전후보상도 받지 못한 채 우토로마을은 방치되었습니다.

실업자가 된 그들은 생계유지가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돌아갈 뱃삯도 없어 고물, 폐지 등을 모아 팔며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같은 해 9월에는 언젠가는 조국에 돌아가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조선인학교를 세웠지만, 이조차 1949년 일본 정부의 탄압으로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1987년 업적 부진에 허덕이던 닛산자동차 그룹은 경영 적자를 보충하기 위해서 유휴자산 매각을 검토했고, 닛산차체는 우토로 마을의 토지를 처분하는 방침을 굳혔습니다. 닛산차체는 우토로 주민들 몰래 토지를 주민회 회장에게 3억 엔에 매각하였습니다. 주민 회장은 또 다시 4억 5천만엔에 부동산 회사 서일본식산(니시니혼쇼쿠산)에 전매하였습니다.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토지 매매 계약이 체결되었던 것입니다.

서일본식산은 주민 전원에게 퇴거를 강요하였습니다. 판잣집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던 우토로 주민들에게는 난데없는 날벼락이었습니다.

1989년에는 교토지방재판소에 주민들을 피고로 ‘건물수거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해 1998년 승소하였습니다. 주민들은 60년 가까이 살아온 우토로 땅이 자신들 모르게 매매되었고, 또한 재판에 피고로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억울함과 불안감에 주민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우토로 주민들은 오사카고등재판소 항소를 거쳐, 최고재판소에 상고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갖은 노역에 시달린 것도 모자라, 노역에 대한 아무런 임금도,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방치되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도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되었고, 우토로를 살리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해졌지만 우토로 마을은 2년 뒤면 철거 된다고 합니다.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토로 마을은 역사 속으로 잊히겠지만 제2의 우토로 마을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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