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35대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는 “나는 책임을 지고 임무를 수행할 것이며, 그것이 잘 되지 않을 때도 그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L. S. Churchill)은 “훌륭한 정치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예언이 왜 적중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 그 중에서도 국가의 최고 지도자에게 부여된 책임과 통찰력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잘 알 수 있는 말들이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환호는 잠시, 박근혜 당선인의 양 어깨는 실로 무겁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가 심상치 않은 데다 각종 국정 현안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 모든 과제들을 대통령이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헌법상 권한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영광보다는 고난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준비를 시작해서는 이미 늦다.”라고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2월 25일 이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 준비를 잘 해도 국정 운영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준비가 미진해서야 그 결말이 어떻게 되겠는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국정 과제를 세세히 살피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도구로 삼아야 한다. 처음부터 우왕좌왕하면 5년이 힘들다.

   이명박(MB) 정권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에는 500만 표의 승리에 도취되어 국정 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무엇보다도 몇몇 실력자들이 국정보다는 권력 투쟁에 심혈을 기울인 탓이 크다. 또 부적절한 청와대 인사와 일부 핵심 참모들의 불미스러운 언행 때문에 취임하기 전부터 국민의 불신에 직면해야 했다. 취임 첫 해 심각하게 봉착했던 대대적인 촛불 집회도 야권의 과도한 저항은 차치하더라도 정권 인수 과정의 부실이 그 빌미를 제공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에 매몰되어 이전 정권들과 반대로 뒤집겠다는 의욕 또한 MB 정권이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요인이었다. 물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지쳐 있었고, 그 결과 5년 전 대선에서 MB 후보가 500만 표가 넘는 엄청난 차이로 승리를 움켜쥘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정권이 잘못만 저질렀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두 정권이 시대 흐름상 채택한 바람직한 가치까지 MB 정권이 외면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보수 진영의 ‘잃어버린 10년’이란 정서에 현혹되어 이 가치마저 멀리하고 말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통의 부재는 MB 정권의 여러 업적마저 상쇄시키는 효과를 자아냈다. 필자는 5년 전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에 쓴 「이명박 정부의 성공 조건」이란 글에서 그 첫 번째 조건으로서 국민과의 소통을 들었다. “역대 정부들의 실패는 주로 ‘소통의 실패’였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오만과 독선’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이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지의 충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MB 정권 역시 소통에 실패했다. 국민과의 소통이 얼마나 소중하면서도 어려운가를 박근혜 당선인은 깨달아야 한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 것 같지만, 5년이라는 제한된 임기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막상 그리 많지가 않다. 바꿔 말해서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와 로드맵을 잘 정해놓지 않으면 시행착오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다. 또한 그 많은 공약들 가운데 취사선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설령 타당성과 효율성이 있는 공약이라 하더라도 재원과 시간의 한계 때문에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제도상의 난점, 국회의 협력 여부, 국민 여론의 향배, 관료 조직의 실태에 따라 의욕만큼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야당의 반대는 국정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제19대 국회가 여대야소(與大野小)이지만, 새누리당은 불안한 과반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있을 재선거 혹은 보궐선거를 통해서도 현 상태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설령 안정 과반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의석수의 우위만으로 전투적인 야당에 대해 주도권을 행사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대화와 타협의 미덕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까지 포용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야당도 동의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과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당선되었다고 해서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라고 무한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각계각층의 국민과 소통을 잘 하라는 주문도 이런 취지에서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을 잃는다. 그것은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라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 Dostoevskii)의 말처럼 권좌에 앉아 있으면 본의 아니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늘 경계함으로써 권력욕을 제어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책임은 막중하지만 이 방대한 국정의 많은 부분을 직접 챙길 수가 없다는 것이 적지 않은 애로이다. 따라서 거버넌스(governance)의 원리를 잘 음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부처 장관 이하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자(manager) 혹은 조정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피로감을 덜기 위해서는 국무총리가 국정을 통할할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맞는 적임자를 뽑아야 하고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대독 총리’ ‘의전 총리’를 임명해 놓으면 대통령에게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를 유지하고 있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국무총리가 맡고 있다. 그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복합 다원 시대의 권력구조로는 가장 바람직한 권력구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도 이런 방향으로의 개헌이 필요하지만, 개헌이 이루어기 전이라도 이런 정신으로 국정 운영을 할 수도 있다. MB 대통령이 외치에는 비교적 성공했으면서도 내치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대통령 혼자서 외치와 내치를 사실상 모두 지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M. Kennedy)는 “한국은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에 둘러싸여 있어 이들을 화나게 하면 상처를 입거나, 심하면 밟혀서 죽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잘 묘사한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한반도 정세는 불안정하다. 거기다 일본은 국가적 위기에다 극우 정권이 들어섰다. 북한 역시 김정은 정권의 내일을 알 수 없을 만큼 유동적이고 어떤 모험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최고 외교관인 대통령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성숙 경제를 맞아 더 이상의 성장 동력이 어렵고, 설령 일정한 성장이 있더라도 ‘고용 없는 성장’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이 시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에게는 하나의 숙명이다. 게다가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할 여지는 점점 축소되는 추세여서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기가 쉽지 않다. 실상이 이런데도 대통령 후보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경제성장률을 몇 퍼센트 달성하겠다는 식으로 지키기 어려운 공약들을 남발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정부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서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접근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역시 교육이다. 우리 국민들이 생활세계에서 절감하듯이 대한민국 교육은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의 천덕꾸러기이다. 이대로는 국민의 지나친 부담에 따른 생활고를 덜어줄 길이 없고, 글로벌 시대와 지식정보 시대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기도 어렵다. 당장 실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준비를 잘 한다면 임기 5년 안에 그 전환점을 마련할 수도 있다. 교육 관료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관련 전문가와 활동가들 중심으로 위원회 체제를 가동해서 좋은 대안을 산출하기를 바란다.

   박근혜 차기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이 여당으로서 잘 뒷받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새누리당 모습으로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이 승리한 것도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민주당의 과오 때문이다. 따라서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의 환골탈태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거의 제왕적 총재처럼 당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도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이 떠나면 물결 따라 표류하는 돛단배 신세일 가능성이 높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인재는 나라의 기둥이다. 따라서 통치의 근본은 인재를 얻는 것이고 교화의 근본은 인재를 기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박근혜 차기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의 고려와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두루 등용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출신 지역, 경력, 직업, 부분적으로는 정파를 불문하고 애국심과 균형감각과 통찰력이 뛰어난 인재들을 잘 규합해야 한다. 그래서 5년 후에는 성공한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순항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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