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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 통일 신라 시대, 청해진을 비롯하여 바다의 패권을 잡은 사람은 바로 장보고였다. 평민 출신으로 왕족의 자리까지 넘본 장보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장보고는 완도에서 평민 출신으로 태어나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신라는 극히 폐쇄적인 신분제도인 골품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출세하기가 어려웠다.

출세에 야심이 있었던 장보고는 당나라로 가게 됐고 그 곳에서 서주 무령군에 들어가 군 장교까지 올랐으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곳도 출세길이 가로막혀 있어 결국 신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당이라는 대국에서 장교까지 오른 장보고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때문에 왕을 만나기만 하면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문에 도읍 경주에 기거하며 관리들에게 당에서 가져온 사치품을 뇌물로 주어 결국 흥덕왕을 만나게 되었다.

 

장보고는 흥덕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는 참상을 전하며, 완도에 군사 거점을 세워줄 것을 청했고, 승인을 얻어 1만여 명의 군대를 확보하여 완도에 청해진을 세우고 대사가 되었다. 장보고의 활약으로 인해 해상에서 신라 노예를 매매하는 일이 사라졌다.

당나라에서 장교까지 한 장보고는 당나라 사정에 밝았고, 당나라 사람들과 언어 소통이 잘 되었기 때문에 당과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장보고의 무력과 활발한 신라인들의 무역 활동이 합쳐져 청해진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했으며 청해진을 설치한 이후 해적들의 활동이 크게 줄어들어 무역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과 왜의 중간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중개 무역까지 하는 등 그 세력은 날로 커져가게 되었다.

또한 산둥 반도에 법화원이란 큰 절을 세워 중국 내 신라인을 위하는 자선까지 베푸는 등의 활동으로 남해와 황해 바다의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토록 세력이 강해지자 장보고는 신분의 한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귀족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는데 결국 이 마음이 장보고가 비참하게 죽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장보고를 대사로 명했던 흥덕왕이 재위 11년 만에 사망 한 후 신라는 왕위 다툼이 일어나게 됐다. 왕위다툼에서 희강왕에게 패하고 피살된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오자 장보고는 미래를 위해 그를 숨겨주었다. 그러나 희강왕이 재위 3년만인 838년 민애왕이 일으킨 정변으로 피살되자 예전 김균정의 편에 섰다가 패하고 달아난 김양이 군사를 모아 청해진으로 찾아와서 김우징을 만나고 장보고에게 도와줄 것을 청했다.

이때 김우징은 장보고에게 자신을 도와주면 왕위에 오른 후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겠다는 약속을 한다. 왕족과 사돈이 되면 같은 왕족이 되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장보고는 정년에게 청해진의 군사 5천을 내주어 김양과 함께 왕경으로 쳐들어가게 된다.

장보고가 이끄는 청해진 군사는 왕경에 입성, 왕경군을 격퇴한 뒤 민애왕을 죽이고 결국 김우징(신무왕)을 왕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이 공으로 장보고는 감의군사의 직책과 식읍 2,000호를 하사받게 된다. 또한 무왕이 죽고 문성왕이 즉위한 뒤에는 평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진해‘장군’에 임명되어 그 위세를 떨치게 된다.

원래 장군 신라시대에는 진골 출신만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의 딸 또한 왕비가 되기로 약속되어 있어서 장보고의 위세는 끝없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하들이 장보고가 평민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딸이 문성왕의 후궁이 되는 것을 반대했고 결국 혼사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장보고는 이런 귀족들의 행동에 대노하게 되었고 이를 갈기 시작한다. 장보고의 보복을 두려워 한 귀족들은 결국 장보고를 암살하기로 하는데 이를 위해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을 암살자로 보냈다.

염장이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장보고는 염장을 귀한 손님으로 우대하여 술자리를 열었고, 장보고가 술에 취하자 염장은 장보고를 살해하고 말았다.

장보고가 살해당하자 귀족들은 청해진을 해체시켜 신라는 무역으로 얻던 이익을 잃게 된다. 이때부터 신라는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는 계급 때문에, 외국에서는 국적 때문에 능력을 갖고도 최고가 되지 못했던 장보고. 스스로 계급을 이겨내려 했지만 기득권은 그런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그 폐쇄성으로 인해 국가까지 몰락하게 된 신라. 장보고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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