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인이었던 폴 발레리(Paul Valery)는 “우리 시대의 고민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과거와 다르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옛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라고 했다. 어느 시대든 선지자들이 나서서 변화와 쇄신을 강조하는 편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데다 구조적인 한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의 충격에 의해 변화가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이다.

   시간의 흐름이 급변하는 요즘 시대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활양식은 크게 바뀌지만, 제도나 의식은 과거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대중의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다. 지도자들 자신이 과거로부터 형성되어 온 기득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활발하고 다원적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정치적 변화는 빠를 수밖에 없지만, 각각의 정치 세력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안주해 있어 선택하고 싶은 새로운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 안에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에 함께 성공한, 보기 드문 나라이다. 그것도 자원이 대단히 빈약하고 남북한이 분단된 여건에서 이뤄낸 눈부신 성과였다. 이 압축 비약 발전에 대해 나라 밖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후유증 또한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통용되었던 ‘나눔의 미덕’은 점점 퇴색되고 있고,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는 철학이 국민의 관념을 짓누르고 있다. 또한 헌정 질서가 시작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법치주의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참다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원리를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바꿔 말해 돈을 많이 버는 일이 곧 시장경제요, 독재정권을 물리치면 곧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는 착오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법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며, 이를 어길 때에는 제재를 받고 극단적으로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원칙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과점이 곧 시장경제는 아닌데도, 날이 갈수록 독과점의 폐해가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은 대한민국 시장경제의 토양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라고 천명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현대 민주주의는 곧 대의 민주주의요, 대의 민주주의는 곧 정당 민주주의라고 할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빈약은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대리자인 정당과 국회가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우리 정당과 국회는 국민과 시대의 요청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함은 물론, 정당법과 국회법 등 관련 법령마저 위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당과 국회에서의 ‘상식과 대화와 타협의 실종’도 정치 위기의 중요한 단면이다.

  

▲ 낡은 체제로는 미래가 없다.

이대로는 많은 국민이 바라는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매우 난망하다. 우선, 이런 낡은 체제 혹은 낡은 시스템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높은 파도를 넘기가 힘겹다. 글로벌 시대는 치열한 경쟁을 특징으로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지 않고서는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 설령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수준으로는 국가 경쟁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는 기업 이미지로는 지식정보 시대의 막강한 소비자 주권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낡은 체제 속에는 낡은 교육도 포함된다. 획일적이고 주입식 위주의 교육으로는 글로벌 시대에 필수적인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점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정부의 교육 예산이 늘어나고, 많은 교육비 지출이 가정 경제를 위협하며, 학원 간판이 거리를 점령하다시피 하는 교육 천국인데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둔재들을 양산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우리나라 내부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진작 국제사회에 내보낼 만한 경쟁력 강한 인재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불행은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선진국이 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인 정신적 수준의 하락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또는 청렴성의 부족은 그 경위가 어떠하든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중대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몇몇 개개인의 도덕성 마비에서 오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부정과 부조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연과 학연 등의 연고주의를 통해 뭉쳐진 부조리 네트워크는 대단히 깊고도 튼튼하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과 공직사회 자체가 알게 모르게 이 네트워크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에 검찰총장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현 정권이 불과 3개월 후에 끝나는 시점인데도 검찰총장이 갑자기 사퇴해야 할 만큼 검찰의 사정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 명의 검사가 불미스러운 일로 구속되어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검찰 개혁이 더 이상 미뤄질 수 없는 중요한 당면 과제인 것이다. 공복(公僕)의 신분을 잊고 있는 공직자들이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반드시 부정부패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려는 공직사회의 풍토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가장 큰 과제는 역시 정치의 정상화이다. 많은 문제들이 고질화되어 있어 그 혁신이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중에서도 그나마 정치 혁신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우리 국민들이 신성한 표의 행사를 통해 정치 혁신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표적인 정당들 모두가 낡은 체제의 일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끔은 새로운 세력이나 인물의 출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들 역시 기존 정치권의 레퍼토리에 너무 익숙해 있었던 탓에 정치 혁신은 늘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안철수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태동했다. 안 후보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낡은 정치와 낡은 경제, 낡은 교육을 비롯한 낡은 체제를 혁파해 달라는 많은 국민들의 염원이 표출된 것이었다. 비록 자신의 잘못된 처신과 민주당의 소탐대실로 안 후보는 도중하차했지만, ‘안철수 현상’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은 여전히 살아 있다. 과연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그 소명을 제대로 받들 만한 의지와 동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안철수 후보의 도중하차는 체제 혁신이 아니라 체제와의 타협에 머물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당초의 이상은 퇴색되었고, 그렇다고 기득권을 뒤집을 만큼 정치공학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필자가 자주 강조해 온 대로 안 후보가 운이 좋아 야권 단일 후보가 되었다 하더라도 낡은 체제와 손을 잡은 안 후보에게 체제 혁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안 후보의 선택 여하에 따라 금년 대선의 승부가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위의 맥락에서 볼 때 안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이것은 체제 혁신과는 무관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정권이 낡은 체제의 지속이라 하더라도 우리 국민에게는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이끌고 갈 집권 세력에 대해 체제 혁신을 주문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체제 혁신을 위한 사회운동의 활발한 전개가 절실하다. 그동안 이런 종류의 사회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정파성과 낡은 습속에 매몰되어 있었다. 즉자적인 대응은 있었지만, 흐름을 바꿀 만한 유의미한 운동은 아니었다. 게다가 운동가들 대부분이 정치권으로 떠났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새로운 정당의 건설이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일정한 자기 개혁을 추진하겠지만, 낡은 체제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대 흐름과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안철수 후보가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안 후보의 참여 여부와는 별개로 진행되어야 한다. ‘안철수 사당’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글로벌 시대와 지식정보 시대를 선도할 명실상부한 미래 정당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것이야말로 ‘안철수는 사라졌어도 안철수 현상은 사라질 수 없음’을 확인하는 길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bich Tolstoy)는 “큰 의문은 큰 진보를 낳고 작은 의문은 작은 진보를 낳는다. 그러나 의문이 없으면 아예 진보도 없다.”라고 설파했다. 지금이야말로 큰 의문을 제기할 시점이다. 체제 혁신이 바로 그것이다. 체제 혁신이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님을 확신하고 이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진일보가 가능하다. 이번 대통령 선거 자체는 낡은 체제의 지속을 재확인하는 정례 행사에 불과하겠지만, 역설적으로 체제 혁신의 중요성을 각성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리라 믿는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