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장원균 인턴] 한국 프로레슬링의 살아 있는 역사, 이왕표 선수가 40년의 프로레슬링 선수 생활을 마쳤다.

지난 5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이왕표 은퇴 기념 대회 ‘포에버 챔피언’에 모습을 비친 이왕표는,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김일 선생님께 야단맞을까 걱정이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화려한 기술과 쇼맨십으로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이왕표. 그는 어떤 프로레슬러 였을까?

▲ 이왕표 (출처/채널A 뉴스 방송 화면)

이왕표는 역도산 1기 문하생이자 ‘박치기의 명수’라 불리는 한국 프로레슬러의 전설 김일 선수의 후계자이다. 김일 선수는 1994년 이왕표 선수를 정식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이에 이왕표는 프로레슬링을 되살려야 하는 책임감을 더욱 갖게 되었다.

그는 1975년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하여, 1600차례의 경기를 치른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증인이다. 콧수염을 기른 매서운 눈빛에 표범이 그려진 태권도복을 입고 등장하여, 상대를 향한 시원한 돌려차기와 드롭킥은 그의 주특기였다.

또한 그의 피니시 기술 ‘드래곤 스페셜(=드래곤 킥, 2단 로프를 밟고 상대방의 머리를 가격하는 기술)’과 ‘파워밤(허리를 숙인 상대의 머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양 팔로 허리를 잡아 들어 올린 후 바닥에 후두부와 등을 내리 꽂는 기술)’로 인해 그에게는 ‘나는 표범’, ‘슈퍼 드래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그의 프로레슬러로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데뷔 이후 20경기를 전패하며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이때 그를 잡아준 것은 바로 그의 스승인 김일 선수였다. ‘쓸데없이 건달들하고 어울려 다니냐. 네가 깡패냐’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많이 맞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정신을 차리고 경기에 집중하여, 한 번, 두 번 이기고 나니 다시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1985년 처음으로 NWA(National Wrestling Alliance) 오리엔탈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가 꼽은 기억에 남는 경기는, 2000년 3월 스승 김일 선수의 은퇴식에서 펼쳐진 자이언트 커간(캐나다)과의 WWA 타이틀 매치라고 한다. 이날 그는 ‘1967년 김일 선생님이 WWA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이후 33년 만에 가져와 더욱 기뻤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프로레슬링 선수가 각본이 아닌 실력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몇 차례 종합격투기에 출전하였다. 2008년 김일 추모 프로레슬링 대회에서 미국 종합격투기 선수 밥 샙과의 MMF(종합격투기)규칙의 대결에서 TKO승을 거두었다.

이듬해 이왕표는 밥 샙과 리턴매치를 펼쳤다. 이날 세계프로레슬링협회(WWA) 타이틀을 걸고 대결하였으나 아쉽게도 TKO 패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가던 사람이다.

2013년 담도암으로 투병생활을 보낸 이왕표는 세 번의 수술을 하며 건강을 회복했다. 그 이후 경기에 참여하지 못한 그였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이 끝까지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위해 힘을 다하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다.

25일 은퇴식을 가진 이왕표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착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그는 팬들에게 한국프로레슬링을 지키는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내 달라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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