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역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를 일으켰던 타이타닉 호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Edward John Smith)는 사고 발생 5년 전인 1907년에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사고라 할 만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배의 조난을 목격한 일도 없었을 뿐더러 내가 재난의 주인공이 되는 사고를 겪은 적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인간의 오만이 가공할 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깨우쳐 주는 참으로 소중한 교훈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인 로버트 서튼(Robert I. Sutton)은 주장하고 있다. 서튼 교수에 의하면, “운전자의 90퍼센트는 자신의 운전 능력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하고, 94퍼센트의 교수는 자신이 평균적인 교수들보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실제 10개의 일만 하고도 15개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좌),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우)

   우리는 금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과 도중하차는 과대평가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안 후보의 출사표가 정치 혁신에 대한 국민의 염원에 상당히 부응하는 길이었다 하더라도 보다 겸손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정치 혁신의 밀알이 되겠다는 각오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대의 틀을 구성했어야 했다.

   문재인 후보를 포함한 민주당 또한 일종의 과대망상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그렇게 주창하던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 했다. 적어도 대국적인 견지에서 안 후보와 아름다운 단일화를 만들어내어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안 후보를 껴안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야권의 대동단결을 주장하면서도 당리당략을 넘어서지 못했다. ‘친노 패권주의가 또다시 통한다.’는 오만의 발로이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역시 오만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필자가 누차 언급한 대로 박근혜 후보는 5년 전부터 ‘대세론’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지지율이 등락을 거듭할 때마다 어느 정도 태도에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안철수 현상’이 더욱 거세지자 몸을 낮추기는 했지만, 안 후보의 도중하차로 또다시 특유의 오만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기루에 도취되어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새누리당은 이번 대선에서의 승리를 기약하기는커녕 존폐의 기로를 운운할 만큼 백척간두에 서 있었다. 당 이름을 바꾸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여 지난 총선에서 어렵사리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가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의 자충수에 의한 결과였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이후 새누리당은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요컨대 이번 대선은 박근혜 후보에게 대단히 불리한 선거이다. 현 시점에서의 국민 여론 역시 초박빙의 접전이다. 그것도 야권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결렬되었고, 안철수 후보가 태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의 숫자이다. 아직도 안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만 하더라도 표심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외에도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선,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가 절반을 훨씬 상회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적으로 새누리당의 재집권이 대단히 어렵다는 말이다. 박 후보의 집권을 정권 교체로 바라보는 유권자가 없지는 않지만, 이는 극소수에 해당한다. 아무리 박 후보가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 왔다고 해도 현 정권의 공과(功過)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정권교체론에 동조하는 유권자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후보에게 ‘새누리당 정권 심판론’을 타개할 만한 결정적인 무기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은 박 후보로서 내세울 만한 카드인지 모르겠지만, 여론의 호응을 기대할 정도의 브랜드 파워는 아니다. 오히려 박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한 지가 오래되어 식상함을 느끼는 경향이 더 크다. 새누리당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현상 역시 박 후보를 과거형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숙명을 안고 있다. 박 정권의 과오를 박 후보에게 책임 지우기는 어렵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박 후보의 역사관인데, 박 후보는 몇 차례의 기회에서 국민의 정서와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대처했다. 또한 박 후보가 구시대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은 적어도 박 후보가 미래지향적인 지도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내세울 만한 강점이 별로 없어서인지 네거티브 캠페인에 매달리고 있다. 주로 전·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철 지난 레퍼토리에 유권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개될수록 개인기가 상대적으로 강한 박 후보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겠지만, 구태 정치에 대한 신물 때문에 박 후보에 비해 참신한 문 후보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점점 시대 흐름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택해 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금년 대선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개방, 참여, 공유’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안철수 후보가 가장 적합했다면, 그 다음으로는 문재인 후보 쪽이 아닐까? 박근혜 후보는 ‘경제 민주화’ 등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부산·경남(PK) 출신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가 없다. 이미 PK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를 야권에 빼앗겼고, 부산시장 선거 역시 야권이 45퍼센트 가까운 득표를 했다. 그리고 금년 총선에서도 이 지역에서 야권은 40퍼센트 안팎의 득표율을 달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후보의 득표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박 후보가 여타 지역에서 만회를 한다 하더라도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여러 요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승리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가 유종의 미(美)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고, 문재인 후보가 캠페인에서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선거 초반에 불과한 현 시점에서 승리에 점점 도취되고 있다는 점이 박 후보의 승리를 예견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더욱이 캠페인 능력에 관한 한, 새누리당은 야권에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현격한 열세이다.

   정확히 10년 전 대통령 선거의 양상이 이랬다. 그 때도 새누리당의 전신(前身)인 한나라당은 대세론에 빠져 있었고, 노무현 후보가 여권 단일 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승리의 환호성을 질러대기에 바빴다. 참모들은 논공행상을 계산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많은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기보다는 줄을 대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 결과, 생생히 기억하듯이 한나라당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다.

   물론,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은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언급하는 것은 새누리당 주변의 분위기가 10년 전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정세를 바라보는 눈도 정확하지 못하고 캠페인 조직도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현상도 엇비슷하다. 그래서 지지자들의 얼굴에 승리를 위한 비장감은 없고 자만심만 가득한 편이다.

   17세기 일본의 유명한 무사였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는 “3살짜리 어린 아이와 마주 설 때도 몸조심을 한다.”라고 했다. 또 인도 철학자인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ishi)는 “신은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신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는 쪽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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