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우)

   손자(孫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박근혜 후보와 진보·개혁 진영의 문재인 후보 간의 치열한 맞대결인 이번 대통령 선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피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양 진영의 지략 싸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이 적어 작은 실수조차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지피지기를 통해 마지막 화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하는 황야의 결투가 펼쳐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여성 대통령’과 ‘정권 교체’를 각각의 당선 명분으로 들고 나왔다. 이것들은 필자가 늘 말해 온 캐치프레이즈의 4대 요건인 ① 시대성 ② 정체성 ③ 차별성 ④ 간결성의 원칙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다른 어떤 구호보다도 상대적으로 호소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성 대통령’과 ‘정권 교체’를 바꿀 만한 다른 대안이 보이지도 않는다. 새로운 것을 내세울 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여성 대통령’과 ‘정권 교체’는 5퍼센트 남짓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여성 대통령’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오랜 세월 남성 지배 사회였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여전한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대사건이고 역사적인 진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동안 주눅 들어 온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할 것이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은 ‘남성 대통령’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성(性)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준 이상이 되기가 어렵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박근혜 후보가 여성 리더십의 특장이라 할 자애로움과 부드러움 그리고 섬세함을 두루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박 후보가 보통 여성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는가도 관심사이다. ‘여성 대통령’이 어떤 유권자 집단을 겨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여성 대통령’은 일종의 승부수이자 ‘양날의 칼’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라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는 분석도 나온 적이 있다. 시간이 좀 지났고, 박 후보로서는 두 번째 맞는 대선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겠지만, 여전히 ‘여성 대통령 시기상조론’을 갖고 있는 유권자들도 남아 있다. 심지어 여성 유권자들 중에서도 이런 논리에 동의하는 정서가 적지 않은 현실이다.

   결국은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박근혜 후보의 어떤 리더십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맞아 떨어지느냐가 핵심 포인트이다. 박 후보 역시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남성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여성이 집권해야 한다기보다는 여성이란 특성을 포함해서 자신의 경륜과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살리는 데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따라서 통찰력 등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부각시키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박근혜 후보는 오랜 세월 동안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 받아 왔다. 우선, 외모와 품격에서 우러나는 신뢰감이 강한 편이다. 실제로 인간성 측면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을 살려냄으로써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과시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지도자로서 유능하다고 해서 곧 대한민국의 훌륭한 대통령이 되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이와 같은 장점만큼이나 단점 또한 적지 않다. 여성 특유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에 가까운가에 대한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카리스마가 강한 나머지 권위주의적이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새누리당의 회생에 공이 큰 탓인지 박 후보 없이는 새누리당이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만큼 새누리당의 자생력 부족 역시 대선 국면에서나 그 이후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과거사에 대한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세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박근혜 후보의 대선가도에 중대한 걸림돌이다. 또한 박 후보의 남다른 애국심은 높게 평가받을 수 있지만, 강한 국가주의자의 면모에 대한 젊은 층의 거부감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요컨대 위와 같은 강하고 완고하며 답답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여성 대통령’이란 말과 어울리지 못하고, 트렌드와도 충돌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박근혜 후보는 외연을 넓히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선진통일당과 합당을 마무리했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까지 끌어들였다. 여기에 민주당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당내의 이재오 의원까지 가세한다면 진용을 거의 갖추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의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개인기에 흠집이 생기면 대선 승리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후보는 여러 가지 점에서 박근혜 후보와 대비된다.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요직을 거쳤지만, 정치 경력이 일천하다.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서의 활동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리더십의 스타일도 박 후보의 카리스마 리더십과 많이 다르다. 착하고 겸손한 리더십이다. 단점도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장점 또한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문 후보는 개인기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진보·개혁 진영의 집단적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진보·개혁 진영 안에는 분파가 많지만, 공통적으로는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시절의 국민운동본부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도 야권 후보 단일화를 ‘국민 연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화 운동권의 결집이다. 이 진영이 가진 장점은 강한 운동성이다. 시대 흐름에 대한 포착이 빠르고 전략과 전술에 능하다. 그래서 당연히 캠페인 능력 또한 뛰어나다. 어떤 연대의 고리로 한 번 뭉치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말하자면 진보·개혁 진영의 응집력은 문재인 후보에게 든든한 우군이 될 수가 있다. 하지만 문 후보의 승리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이 진영의 무분별한 투쟁이라는 관성은 합리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문 후보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문 후보 역시 이 진영을 제어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도 못하다. 또한 이 진영의 좌파 민족주의도 문 후보에게는 부담이다. 이 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운동과 정치와 제도를 혼동하는 습속이다.

   진보·개혁 진영은 대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충만해 있다. 이런 기운 때문에 ‘정권 교체’에 대한 열정이 막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열정이 지나치다 보면 앞서 말한 이 진영의 집단성과 맞물려 예기치 못한 실수를 노정할 수도 있다. 지난 총선 때의 막말 파문이 그랬듯이 말이다.

   문재인 후보에게 노무현 정권의 공과(功過)는 자산이자 부채이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데에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이 자산으로 작용했지만, 본선 승리를 거머쥐는 데는 부채로 기능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차별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무엇보다도 문 후보가 중립적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안철수 후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사실, 야권 입장에서는 안철수 후보를 야권 단일 후보로 만들고 진보·개혁 진영이 떠받치는 조합이 정권 교체에 가장 유리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의 소탐대실로 이 선택은 폐기되었다. 문재인 후보의 개인기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고, 진영의 집단적인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안 후보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정권 교체의 여부는 안 후보의 선택에 상당히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와 같이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의 ‘정권 교체’는 각각의 함정을 갖고 있다. 어느 쪽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어쨌든 보수 진영의 개인기냐 진보·개혁 진영의 집단적 힘이냐의 싸움이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느 쪽이 무엇으로 기선을 제압할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지만, 지난 1년이 그랬던 것처럼 유권자들의 ‘눈’이 안철수 후보의 ‘입’에 모아지지 않을까.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당신이 군주든 공화국 지배자든 분열된 도시에서 양 정파 모두로부터 호의를 얻을 순 없다. 천성적으로 인간은 어느 한쪽을 편들게 되고 한 정파가 다른 정파보다 사람들을 더 기쁘게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중원(中原)을 향한 혈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 중립적 유권자들의 고민도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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