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고대의 군사 지휘관들은 부하들이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게끔 만드는 일을 우선적으로 시행했다.”라고 말했다. 싸우는 이유와 우리 편이 승리해야 할 당위성을 느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 전쟁의 승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뜻이다.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선거에서도 이런 동기 부여는 승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관건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은 야권의 후보 단일화 국면을 맞아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이것이 막상 가시화되자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연일 야권 후보의 단일화 추진에 대해 파상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이런 행태야말로 스스로의 열세를 인정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누가 야권 후보가 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채비를 했더라면 후보 단일화 따위에 크게 괘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오래 전부터 ‘대세론’에 심취해 있었다. 박 후보의 경쟁력을 능가할 만한 야권 대선 주자가 부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작년 9월 말에 안철수 후보가 급부상한 이후에도 대세론에는 변함이 없었다. 안철수 후보의 거품이 얼마 안 있어 꺼질 것이라는 희망사항이 지배한 결과이다. 게다가 지난 4월에 있었던 제19대 총선의 승리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에게 착시 현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배경 아래서 박근혜 후보는 총선 이후 몇 차례의 갈림길에서 국민의 정서와는 정반대되는 방향을 선택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규정 논란, 과거사에 대한 태도,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새누리당도 비례대표 의원 공천 헌금 의혹,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등을 통해 국민적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면서 민심은 멀어져갔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상쇄할 만한 특별한 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꼭 당선되어야 할 만한 남다른 브랜드 파워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필자가 누차 지적한 대로 5년 전의 ‘줄․푸․세’ 공약을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로 바꾼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것은 보수 후보의 전속 무기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히든카드를 별도로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원칙과 신뢰’가 박근혜 후보의 특장일 수는 있어도 유권자들에게 다음 5년을 부탁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뒤늦게 들고 나온 대안이 ‘여성 대통령’이다. 5년 전만 해도 ‘여성 대통령’을 입에 올리기도 어려웠는데, 이런 점에서 용기가 가상하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론 자체만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 그 당위성을 강변하기보다는 박 후보가 가진 리더십의 장점을 실제로 입증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행태와 경쟁력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새누리당 자체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권 여당으로서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변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불상사들도 문제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새누리당의 낡은 구조와 풍토를 쇄신하지 못했던 일이 뼈아픈 대목이다. 당명을 바꾸는 등 신장개업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역시 이런저런 문제점을 많이 안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오랜 여당이었기 때문에 그 폐단이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사건․사고의 빈도 또한 민주당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문제의 발생도 발생이려니와 이를 해결하는 태도와 방향이 국민의 정서와는 배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의사소통 시스템에 고장이 있어서인지 아무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망언 혹은 실언도 새누리당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다. 이번 대선 국면 들어서만 해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이겠지만, 집단 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부적절한 언사들이다. 감동적인 언행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국민을 화나게 하는 망언이나 실언이 표를 떨어뜨리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시대 흐름에 대한 새누리당의 둔감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이를 보수 정당 특유의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서유럽과 미국의 보수 정당들의 변화 노력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볼 일이 아니다. 그만큼 과거 지향형 혹은 현실 안주형 정치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표를 먹고 사는 조직이 시대 흐름에 뒤처진다는 것은 곧 자연도태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지하듯이 안철수 후보의 등장은 대한민국 정당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그 중에서도 안철수 후보를 야권에 빼앗긴 새누리당으로서는 더 뼈아픈 자책을 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 밝혔듯이, 안 후보는 보수와 진보 성향을 두루 갖고 있다. 그리고 안 후보의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이념적 스펙트럼에 포획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출신 배경이나 성장 과정 등을 감안하면 안 후보는 진보보다는 보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안철수 후보는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과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다. 그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다. 안 후보 정도의 중도 성향의 인사조차 포용할 수 없는 새누리당의 편협성과 경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안 후보는 메시아도 아니고 무결점의 지도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안 후보가 보수의 일각을 무너뜨리고 있는 이 현실 앞에서 새누리당은 분노에 앞서 먼저 반성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지금 안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맥락에서 문재인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이탈하는 표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념을 떠나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미래의 대안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일개 계보 정당으로 전락한 것도 보수 진영의 원심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여러 요인들 때문에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봉착한 가장 큰 난점은 지지자들에게 박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박 후보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리더십과 정치력 및 스킨십의 부족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신과 열정으로 캠페인에 참여하는 지지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신념이 부족한 새누리당에서 말이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절박함을 가질 만하다. 비록 네거티브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두 후보가 각각 주창하는 ‘정권 교체’와 ‘체제 교체’가 적어도 두 후보의 지지자들에게는 뚜렷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두 후보의 자질이 설령 미흡할지라도 ‘정권 교체’와 ‘체제 교체’라는 슬로건만으로도 지지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야권은 평소에 강한 신념으로 무장해 있다.

사실, 개인기 측면에서는 세 후보 가운데 박근혜 후보가 가장 강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런데 박 후보의 이런 진가는 박 후보 본인과 새누리당에 의해 훼손되어 왔다. 따지고 보면, 야권 후보 단일화 자체는 두려운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하기에 따라 야권의 그 어떤 선거공학도 무너뜨릴 수 있다. 핵심은 민심의 소재이다. 민심과 멀어진다면 박 후보가 어떤 상대 후보를 만나더라도 승리를 따낼 길은 없다. 여기에 실패한 것이다.

비유컨대, 소비자들의 기호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다 판매할 상품의 홍보 논리가 부족하고, 판매원들이 상품 판매보다는 판매원 자신들의 업적 과시에 골몰하며, 회사 CEO는 판매원들이 열심히 발로 뛸 만한 동기 부여를 하지 않는 꼴이다. 그리고 방문 판매 아닌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통한 판매가 대세인 시대에 모두들 구닥다리 판촉전을 펼치고 있는 새누리당이다. 이러고도 이 당이 대선 승리를 낙관하고 있는 현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상상력이라고 대답하겠다.”라고 했다. 또 레브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bich Tolstoy)는 “관습에 매이는 것은 자신의 발을 묶어놓고 산으로 달려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라고 일갈했다. 수십만 대군이 모여 있지만, 잘못된 관성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새누리당의 자화상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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