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경제 잡지인 『포브스』의 발행인이었던 말콤 포브스(Malcolm Forbes)는 “지도자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해결책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 능력을 아무나 가질 수 없기에 최고 지도자가 되는 건 늘 소수의 몫이다. 특히 제왕적이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에게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실패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적어도 주체의 측면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 능력의 부족은, 정권을 장악하는 데는 심혈을 기울였어도 집권 후의 청사진에 대해서는 준비를 소홀히 했던 탓이 크다.
 

이 점은 군부 대통령이나 문민 대통령 모두에게 해당된다. 군부 대통령은 쿠데타의 성격상 준비가 부족했다고 하지만, 문민 대통령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선거 캠프의 핵심 역량을 목전의 선거 승리 쪽에 배치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방대한 정책 팀을 가동하지만, 이 파트 역시 실현성이 떨어지는 선거용 공약을 만드는 데 급급할 뿐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준비가 미흡한 데는 대선 결과가 비전이나 정책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종연횡, 흑색선전 등의 선거공학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가끔은 공약도 승부의 변수가 되기도 하는데, 이때의 공약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향한 대단한 비전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일차원적 욕구에 편승하는 포퓰리즘 공약이 대부분이다.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준비된 대통령’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데 일조해 왔다. 기존의 집권 세력이나 지배 세력을 타깃으로 삼아 ‘교체’를 외치기만 해도 표를 얻기가 쉬웠던 것이다. 정경유착, 지역주의, 권위주의, 관념주의 등은 주요 정치 세력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금년 대선에 나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각각 ‘여성 대통령’, ‘정권 교체’, ‘체제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저런 능동적인(positive)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차별성이 없어 눈에 띄는 것은 이런 개념들이다. 나름대로는 주장할 만한 내용이지만, 네거티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안은 보이지 않고, 그 논리적 허점 또한 적지 않다.
 

‘여성 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전에 필자가 이 난을 통해 자세하게 비평을 했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시대가 여성의 참여를 부른다. 각계에서 맹활약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정치권에도 뛰어난 여성 정치인들이 많다. 만일에 대한민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면 그 자체가 대한민국의 진일보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은 여론이 ‘여성 대통령’보다 ‘박근혜 후보가 대(代)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에 관심이 더 많다. 박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당당히 주장하려면 시대정신에 맞는 언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박 후보는 시대성에 있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새로운 뭔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이 필자의 칼럼 요지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꺼낸 배경이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자애로움이 시대정신에 맞는 리더십의 덕목임을 강조하고 싶었을 터이다. 이것은 그동안의 대한민국 정치의 파행에는 남성 정치 지도자들의 지나친 권력욕과 권위주의, 낮은 품격이 크게 작용했다는 암묵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건은 ‘여성 대통령’이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얼마나 필요한가를 입증할 수 있느냐이다. 아울러 박근혜 후보의 경험과 문제의식이 여성 리더십 혹은 미래 리더십과 잘 어울리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후보가 보다 구체적으로 그럴 듯한 논거를 들이대지 못한다면 ‘여성 대통령’은 한낱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정권 교체’론은 새삼스러운 주장은 아니다. 이명박(MB) 정권 내내 야권에서 나온 단골 메뉴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정권 심판’을 부르짖고 있다. MB 정권에 대한 국민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구호는 적지 않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꼭 이번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대선에서는 늘 되풀이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요컨대 ‘정권 교체’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간명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개념이다. 이를 통해 ‘반(反)새누리당 연합’ 혹은 야권 연대를 이룰 수가 있다. 이질적인 야권 세력을 하나로 묶는 데 유효한 공통분모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 국가에서 정권의 인기가 없으면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는 것은 하나의 순리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지난 5년 동안 MB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과연 ‘정권 교체’라는 슬로건이 유권자들의 뇌리에 얼마나 각인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법통(法統)이란 점에서는 박 후보와 MB 정권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이지만, 박 후보는 ‘야당 같은 여당’을 해 왔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에 너무 의존하다가는 대세를 놓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고 있다. 말하자면 ‘정권 교체=문재인’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절반의 가능성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물론, 문 후보는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역설하고 있다. 변변한 정치 세력을 갖고 있지 못한 안 후보에게 승리하기 위해 민주당 지지자들을 결집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주장할 만큼 떳떳한 상황은 아니다. 여론이 MB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당도 새누리당과 별 다를 바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문재인 후보 역시 지도자로서의 매력과 능력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 자력으로는 정권 교체를 달성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안철수 후보가 등장했다. 안철수 후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권을 ‘낡은 체제’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 개념은 낡은 정당, 제도, 패러다임을 총칭한다. 한마디로 ‘낡은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발상이다. ‘정권 교체’의 논리를 훨씬 뛰어넘는 지향점이다.
 

안철수 후보의 개념이 힘을 발휘하려면 낡은 체제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인재들과 새로운 정치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안 후보는 정치권 인사들과 지인들을 중심으로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뿐이다. 여전히 유권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적어도 다음 5년을 함께 할 혁신적인 ‘국정 주체’의 윤곽은 확실히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안철수 후보는 부득이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3파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하고, 설령 3자 대결에서 최종 승자가 된다 하더라도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기에는 자신의 세력이 미약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3파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정황상 단일화의 가능성이 훨씬 높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의 ‘체제 교체’론은 효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 후보 스스로 ‘낡은 체제’라고 비판한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안 후보는 그 자신이 단일화의 조건으로 제시한 ‘민주당 쇄신’ 등의 정치 혁신 공약을 함께 도모하는 것을 단일화의 명분으로 삼으려고 하겠지만, 궁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고 갈파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 후보의 개념들은 여러 난점들을 갖고 있다. 게다가 ‘바꾸자’는 의지는 강하지만, 막상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각자의 개념에 맞는 내용들을 얼마나 채울지, 혹은 보다 능동적인 대안 개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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