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돈은 권력을 잡기 위한 지렛대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돈이 곧 권력이고, 권력이 곧 돈’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돈 선거의 폐단을 목격해 왔다.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돈 선거를 비롯한 금권 정치야말로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극복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10월) 31일, 대구에 사는 50대 초반의 한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금년 4월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선거 빚이 1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얼마나 돈 선거가 만연해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묻고 싶다.

하나뿐인 목숨을 담보로 삼는 일이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선거에 출마한 후보나 그 주변 사람들 가운데 이런 식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설령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출마자 가운데 경제적 곤궁을 겪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대도시가 이런 상황이면, 선거구가 넓고 유권자들이 산재(散在)해 있는 농촌 지역은 더욱 그렇다고 봐야 한다.

정당 공천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의 공천 헌금 의혹이나 민주당 대표 측근의 공천 헌금 수수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두 사건의 진상을 떠나, 공천을 대가로 검은 돈이 오고 가고 있는 관행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뜻한다. 주요 정당들의 전당대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돈 선거가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당이 정당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누차 강조한 것처럼 우리나라 정당들은 ‘공당’이라기보다는 ‘사당’에 가깝다. 또 ‘참여형 정당’이 아니라 ‘동원형 정당’이다. 참다운 당원은 드물고, 이름뿐인 당원들이 대부분이다. 스스로 당비를 내고 자당 후보의 선거에 자원 봉사로 참여하는 구조가 전혀 아닌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출마자들은 법규에서 금지하는 일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선거운동원을 모을 수가 없다. 정당 후보자들이 이러니 무소속 후보들은 물으나 마나다. 일상적인 정당 활동에 있어서도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위원장들은 과도한 비용을 지출한다. 그래서 ‘자동판매기’라는 말이 나온다. 돈을 집어넣지 않으면 지역구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많은 정치 자금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불법 자금을 수수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우리 정치인들은 늘 ‘교도소 담장 위를 넘나드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대체로 운이 좋아 영어(囹圄)의 신세를 면하지만,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필요악’이다. 게다가 선거가 너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가 필요악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정당 내 민주주의를 위한답시고 청년위원장 등 하위 당직자들을 선거로 뽑는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지방자치 선거도 재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치 현실 때문에 많은 국민이 정치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물론,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치 풍토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고, 그 근절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풍토와 구조의 문제이다. 즉 유권자들도 시대착오적인 정치 문화에 일조를 하고 있다.

비단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의 청렴지수는 대단히 낮은 편이다. 해마다 OECD 국가 가운데 거의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아무리 1인당 GDP가 더 높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이런 정신적 후진성으로는 선진국 운운할 수조차 없다.

청렴지수가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잘못된 가치관, 관행, 제도, 리더십이 얽혀 있다. 요컨대 정치인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투명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의 실현은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치권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정치 혁신의 핵심은 당원다운 당원을 많이 늘리는 일이다. 이른바 ‘진성 당원’이다. 이름만의 진성 당원이 아닌 참다운 의미의 진성 당원이 필요하다. 당의 정강-정책을 공유하고, 당비를 자발적으로 납부하며, 당의 선거나 행사를 위해 노력 봉사하는 당원 말이다. 나아가 당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소통하는 당 분위기를 진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기 정당에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당, 좋은 정책 대안을 위해 늘 연구하는 정당, 매사 모범이 되는 국회의원들이 모여 있는 정당임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당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선거 때마다 신장개업을 하고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이 정치 혁신은 아니다.

당원다운 당원이 많아지면 당원의 투표로 공직선거 후보를 뽑을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밀실 공천을 할 필요도 없고, 돈 공천도 저절로 없어진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쓸 여지가 없다. 그럼으로써 보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고 이들이 당선되어 국회를 이끌어야 명실상부한 대의 정치와 정당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정당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아쉬운 것은 세 후보가 내놓는 정치 혁신의 의제들이 보다 근본적이고 철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스스로 낡은 체제의 혁신을 들고 나온 안 후보조차도 그렇다. 원론적이고 현상적인 처방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

아울러 정치의 정상화와 사회 전반의 청렴성을 위해서는 시민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잘 알다시피 서구의 민주주의는 시민 항쟁의 결과물이다. 그 시민 항쟁은 시민정신(Citizenship)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시민정신은 시민의 권리(Citizens’ Right)와는 다른 개념이다. 거기에는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제도를 수입했지만, 시민 항쟁을 통해서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행된 지 25년이 흘렀건만, 민주 사회에 필수적인 시민정신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많은 부문에 걸쳐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고 자위할 수 있겠지만,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다하고 있는 편은 아니다.

특히 법질서를 경시하는 경향은 투명 사회의 실현을 위해 극복해야 할 주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풍조를 견제하고 정의로운 사회 문화를 조성하는 일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각종 시민운동뿐만 아니라 정치 혁신 운동에도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어날 때 대한민국의 투명성은 드높아질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ee)는 “민주주의를 하려면 개인으로서의 투표자가 지적으로 현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사심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금권 정치가 여전하고 청렴성이 떨어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주는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번 대통령 선거가 금권 정치를 혁신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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