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順天者가 승리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Winston L. S. Churchill)은 “정치는 전쟁 못지않게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이며, 똑같이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전쟁에서는 단 한 번만 죽으면 되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희생당해야 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라고 했다. 정치 중에서도 흔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선거야말로 처칠의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야 한다. 특히 ‘제왕적 권력’을 둘러싼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더욱 그렇지 아니한가!

이번 제18대 대선도 이제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때 이른 추위로 몸이 오그라드는 시민들을 위해 열기를 불어넣으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상호간에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새로운 정치에 목마른 우리 국민의 열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이 살벌한 게임에서 승리하겠다는 욕망만이 넘실댈 뿐이다. 어떤 희망의 메시지나 참신한 캠페인 방식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대선 역시 그렇고 그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마당이 되고 있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새누리당은 안철수 후보에게 철이 한참 지난 매카시즘이란 색깔론을 동원했다. 전형적인 말 꼬리 잡기다. 또 새누리당은 문재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후보 단일화가 대통령제 아래서 보편타당한 현상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누리당이 비난할 일은 아니다. 새누리당도 얼마 전에 선진당과 합당을 하지 않았는가? 무분별한 합종연횡에서 자유스러운 정당이나 세력은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박 후보로서는 주장할 만한 내용인데, 그 옳고 그름의 판단은 전적으로 유권자의 몫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심지어 여성 혹은 미혼 여성의 인격을 비하하는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그것도 언필칭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는 민주당이 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여성 대통령론’은 주요 이슈가 되고 만다. 이제 시대가 달라져 그 열매는 박 후보에게로 돌아갈 가망이 크다.

이러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질 낮은 공방전은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안철수 후보가 다크호스로 떠올라 있는 상황에서 안 후보의 존재감을 더 키울 뿐이다. 상당수의 우리 유권자들이 정치 초년생인 안 후보에게 적지 않은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현실은 바로 기존 정치권의 낡은 정치 행태 때문이 아닌가! 이를 잘 알고 있을 양당이 구태의연한 수법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큼 내세울 만한 능동적인(positive) 강점이 별로 없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후보는 코너에 몰린 새누리당을 살려내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선거를 승리로 이끌 정도로 뛰어난 지도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질은 새누리당의 핵심 당원들에게는 호소력이 강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말하자면 중립 지대에 있는 유권자들은 국가 경영 차원의 특출한 리더십을 요구하기 마련인데, 박 후보는 이에 대한 화답이 부족한 편이다. ‘여성 대통령론’을 스스로 꺼내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는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야권에서 즐겨 말하는 ‘노무현 정신’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하지만 문 후보는 국회의원 초선에 불과해서인지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 교체의 당위성 외에 ‘왜 자신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거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민주당이 이번 대선을 시대착오적인 ‘성(性) 대결’로 몰아가는 것도 이런 연유가 아닐까?

그나마 안철수 후보는 낡은 정치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지키고자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다만, 안 후보 쪽은 낡은 정치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참신한 캠페인 기법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또 이번 대선을 ‘과거 대(對) 미래’의 구도라고 강변하고는 있지만, 그 미래가 무엇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안철수의 미래학’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처럼 모든 후보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일관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안개 속 판세’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선거일이 앞으로 5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실상의 치열한 3파전이 전개되고 있는 까닭인 것이다. 요컨대 이번 대선 역시 ‘최선’이나 ‘차선’의 선택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이 될 상황으로 점점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 후보 모두 어떤 요행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후보의 방정식은 분명하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방향이 가장 바람직하다. 3파전일 경우에는 승산이 확실하다. 그 때문에 매일 단일화의 허점을 공격해대고 있다. 설령 단일화가 성사되더라도 문 후보로 귀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안 후보의 지지자 중에 박 후보로 이동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셈법은 이렇다. 단일화를 하면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가 있다. 단일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다 야권이 총결집하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개인기에서도 뒤질 게 없고, 박 후보의 과거사가 이슈로 부각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선보다는 경선을 더 염두에 두고 있다.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는 민주당과 ‘노·사·모’란 조직을 믿는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에게 신승(辛勝)을 거두었듯이.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일화를 빨리하면 할수록 좋다.

안철수 후보의 계산은 다음과 같다. 이번 대선을 ‘낡은 체제 대(對) 새 체제’, ‘과거 대(對) 미래’의 구도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단일화 여부에 대해서는 최대한 시일을 끌어야 한다. 단일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이유가 빛난다. 성급하게 단일화 프레임에 끌려 들어가면 문재인 후보와의 경쟁에서 유리한 점이 없다. 단일화에 성공하면 본선은 하나마나다.

세 후보가 각각 그리고 있는 그림이 현실화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필자가 생각하는 전망은 이렇다. 우여곡절을 거치겠지만 단일화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만, 야권 단일 후보가 누가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 이유는 세력이 미약한 안철수 후보의 준비가 당초의 기대보다는 부족하고, 문재인 후보 역시 세력상의 우위를 누릴 만큼의 개인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팽팽한 대결은 박근혜 후보에게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가면 안 후보의 지지율이 내려간다. 그러면 세력에서 현격한 우위에 있는 문 후보가 단일화 게임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박 후보의 지지율이 현재보다 더 떨어지면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된다. 그런데 박 후보의 지지율은 정체 상태이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그 전환점이 언제가 될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박근혜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어떻게 될까? 다소 낮다는 중론(衆論)이다. 물론, 단일화 경쟁이 누구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좌우될 것이다. 안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가 된다면 이번 대선이 ‘과거 대(對) 미래’ 구도로 정립됨을 의미한다. 그 결말은 너무나 뻔하다. 만일 문 후보가 야권의 대표주자가 된다면 ‘박정희 대(對) 노무현’의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대(對) 과거’의 싸움이니까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박근혜 후보로서는 당연히 야권 후보 단일화의 불발을 바라겠지만, 이것은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박 후보 쪽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마나 상대적으로 승리할 공산이 높은 선택지는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인데, 박 후보의 염원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박 후보 쪽이 안철수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나머지 무리한 공격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안 후보의 입지는 더 탄탄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삼국지를 연상하게 하는 이 정립(鼎立) 구도에서 최종 승자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런 구도일수록 명분이 확고하고 거기에 맞는 순리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확신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다음 금언처럼 말이다. “운명이란 원래가 변하기 쉬운 것이다. 이 변하기 쉬운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말하자면 시대 흐름과 자신의 방식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이에 성공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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