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시선뉴스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에게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되는 기획기사입니다. 본 기사는 사실적인 정보만 제공하며 주관적이거나 아직 사실로 판명되지 않은 사건의 정보 등에 대해서는 작성하지 않는 것(혹은 해당 사실을 정확히 명시)을 원칙으로 합니다※

[시선뉴스 이호기자]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이 있다. 그 중 인맥으로 왕좌를 거머쥔 사람이 우리의 역사 속에 있다. 바로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다.

김춘추는 경주김씨로 진지왕의 손자이며 김해 김씨인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를 아내로 맞아 김유신과의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김춘추는 선덕여왕 때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고구려와 당에 외교임무를 갔다가 감금을 당하는 등 왕족으로는 드물게 많은 고초를 겪으며 성장해 왔다.

진덕여왕이 후손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 동안 왕이 되었던 성골의 대가 끊어져 버렸다. (많은 학자들은 성골의 순수성을 위해 근친을 강조했던 풍습이 대를 잇지 못하게 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촉망받던 상대등 알천과의 경쟁이 있었는데, 알천에게는 군사가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김춘추는 처형인 김유신이 어마어마한 군사 권력가였기 때문에 그를 등에 업고 결국 왕으로 추대 받아 51세의 나이로 왕위에 등극하였다. 그야말로 그의 훌륭한 인맥 덕분에 왕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로써 무열왕 대에 왕권은 전제화 되어 이후의 신라의 왕은 무열왕계의 직계 자손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무열왕은 백제와 매우 큰 악연을 가지고 있었다. 무열왕의 사위와 딸이 대야성을 맡고 있었는데, 백제가 대야성을 취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살되었다. 그 때부터 무열왕은 백제를 멸망시키려는 비원을 품게 되었다.

660년에는 그가 진덕여왕 때부터 인맥을 쌓아왔던(?) 당나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치게 된다. 이 역시 김춘추라는 인물이 인맥으로 자신의 비원까지 해결했다는 점에서 매우 처세가 좋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상대등으로 임명된 김유신을 주축으로 7월에는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5천 명의 백제군을 격파하고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이어서 웅진성으로 피난했던 의자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마침내 백제를 멸망시켰다. 백제에 딸과 사위를 잃은 김춘추의 비원을 이루게 된 것이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 왕이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왕이 됐다기보다는 인맥을 통해 왕이 되었고 신라 자체의 힘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기보다는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에 고구려까지 멸망시키며 반쪽짜리 삼국통일을 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인맥이 있다면 원하는 일을 해결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편리하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당을 통한 삼국통일로 인해 고구려의 많은 영토를 빼앗기는 등 의 단점 같이 중요한 일들을 모두 그런 식으로 해결을 한다면, 당장은 편할 수 있으나 추후 결과가 매우 좋지 않을 수 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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