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소속 안철수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 새누리당 박근혜후보 (왼쪽부터 차례대로)


 


『전쟁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정치가와 지휘관이 내려야 할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이며 영향이 막대한 판단은 그들이 착수할 전쟁의 종류를 확정하는 일이다.”라고 조언했다. 선거도 ‘총성 없는 전쟁’인 만큼 클라우제비츠의 언급이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도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를 파악하는 일이 대통령 후보와 그 참모들로서는 급선무이다.

첫째, 후보 요인과 정당 요인이다.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 등 여타의 선거에 비해 후보 요인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선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후보 요인의 비중은 하락하는 추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02년 대선의 후보 요인은 62.2퍼센트였던 데 비해, 2007년 대선에서는 이것이 46.1퍼센트로 낮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두 가지 요인을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소속 정당의 인기가 없기 때문에 개인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둘째, 중원(中原)에서 우세한 쪽이 승리한다. 여기서 중원이라 함은 지역으로는 충청, 세대로는 40대(代)를 지칭한다. 다만, 충청 지역 정당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변수이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통합이 주목된다. 이번에는 부산·경남에서도 중원 못지않은 혈투가 예상된다. 새누리당의 텃밭 지키기에 사활이 걸려 있는 것이다. 40대는 민주화와 개방화의 체험 세대로서는 변화 지향적이지만, 가장(家長)이자 중견 사회인으로서는 안정 지향적이다. 진취성과 책임감을 두루 구현하는 쪽이 유리하지 않을까!

셋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진부한 전쟁론을 떠올리게 한다. 합종연횡이 잦은 것이다. 이번에도 선거일을 두 달도 채 남기지 않았지만, 2파전이 될지 3파전이 될지, 2파전이라면 박근혜 후보의 경쟁자는 누구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각구도에서 어느 쪽이 승리 방정식을 잘 수립할지 흥미진진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대선보다 두뇌 혹은 지략 싸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넷째, 디지털 선거이다. 이미 10년 전인 2002년 대선에서 아날로그 선거에 익숙해 있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디지털 선거로 무장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다. 디지털 선거라는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박근혜 후보 쪽이 열세이다. 새누리당이 시대 흐름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캠페인 조직부터가 아날로그 일색이다. 캠페인 방식만 보면 새누리당의 필패가 예상된다.

다섯째, 네거티브 캠페인의 위력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효력을 발휘한 경우가 많아서 이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효력이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에서 벌써부터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각 후보들이 갖고 있는 강점이 의외로(?) 약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대통령 후보들의 출마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자신의 싸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는 세 배로 무장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했다. 일반 전쟁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민심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선거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더 그렇다. 아무리 대통령의 위상이 축소되는 경향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정당성 없이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렵다.

박근혜 후보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출마했다고 그 포부를 표명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행복한 대한민국’은 여러 차원에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고, 물질의 성장과 정신적 성숙이 조화를 이루며, 꿈과 희망이 살아 숨 쉬는 사회’라 규정하고 싶다. 이것이 박 후보와 얼마나 어울리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앞으로 박 후보가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며, 법질서를 바로 세우자.’라는 이른바 ‘줄·푸·세’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법치주의와 시장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정책 노선으로 전환했다. 대체로 바람직한 대전환이지만, 이것이 박 후보의 정체성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자신만의 브랜드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이다.

문재인 후보는 사실상 정치 초년생이다. 만일 2009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불행한 일이 없었더라면, 정치권에 나오지 않았을 사람이다. 그만큼 겸손하고, 때가 묻지 않았으며, 권력욕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런 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지지 세력의 강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노 전 대통령의 명예 회복을 위하고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꿈꾸었던 가치를 실현하고자 출마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기억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특히 편 가르기와 지나친 정치 게임이 화를 불렀다. 문재인 후보는 노 정권의 시행착오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문 후보가 밝힌 ‘정권 교체’ ‘정치 교체’ ‘시대 교체’라는 말 또한 상투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 후보가 이러한 3대 교체의 적임자인지도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지금까지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 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주셨다. 나는 이제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그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라고 밝혔다. 또 안 후보는 “지금 대한민국은 낡은 체제와 미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이제 낡은 물줄기를 새로운 미래를 향해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치 개혁과 사회 전반의 혁신이 출마의 명분이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 후보의 무엇이 낡은 체제를 타파하고 새로운 미래 가치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때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경륜이 막중하다. 많은 국민들은 안 후보의 꿈과 열정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유권자들은 안 후보가 현장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함께 할 정치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핸디캡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있다. 또 나름대로는 신선하지만, 아직은 신상품의 품질을 보증할 수 없다.

미국 제33대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Harry Shippe Truman)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단지 잘 생기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했다. 이미지만으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이미지 면에서는 어느 정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콘덴츠에서는 기대에 미달한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민이 이런 상황에 당혹해 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트루먼 전 대통령의 말처럼 남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① 시대를 내다보는 예지력 ② ‘숲’을 조망하는 안목 ③ 국제 정세에 대한 판단력 ④ 갈등이나 차이를 조정하는 소통 능력 ⑤ 국민 대중의 정서를 읽어내는 감수성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들은 이러한 자질을 연마하지 않은 채 대선에 출마하는 편이다. 자신의 특정 경험이나 기술만을 믿고 도전한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는 일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다. 세세한 기능의 습득보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역량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 대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종합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더없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후보들의 준비 부족은 그 자신의 마음가짐에서도 비롯되지만,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인식이 빈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제왕학’을 공부할 만한 시스템의 부재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정경숙(政經塾)과 같은 ‘리더십 스쿨’이 만들어져야 한다. 여기서 국가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질을 가르쳐야 한다. 뛰어난 제너럴리스트나 ‘T자형 인재’를 양성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제임스 캘러핸(James Callaghan)은 “지도자는 전문가의 조언과 반대로 행동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라고 갈파했다. 지도자에게 부여된 선택의 어려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통찰력과 결단력, 결과에 따른 책임감을 두루 나타낸 금언이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게도 이런 고통이 따른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출마의 정당성이 명쾌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운 좋게 당선된다 하더라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리라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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