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좌), 故 노무현 전 대통령(우)
 


독일 작가인 쿠르트 투홀스키(Kurt Tucholsky)는 “어떤 일을 20년 동안이나 계속 잘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과거의 오류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나타내주는 금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을 곧잘 비교한다. 두 선거의 양상이 비슷해서 새누리당 일각에서 2002년 대선의 실패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두 선거에는 다른 점이 있다.

노무현 후보는 오랫동안 ‘정치 개혁’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고 캠페인 능력 또한 강했던 반면에, 문재인 후보는 인격은 훌륭하지만 노 후보의 강점에 많이 못 미치는 편이다. 노 후보가 갖고 있던 파괴력은 문재인 후보보다는 안철수 후보가 이어받고 있다. 또한 2002년은 민주당이 여당이었는데 지금은 야당이다. 공격과 수비가 서로 뒤바뀐 것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다는 점도 10년 전과는 다른 특성이다.

방금 언급한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의 차이점은 박근혜 후보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유리한 점은 없고,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라는 불리한 점만 눈에 띈다. 2002년은 김대중 정부의 실정(失政) 때문에 여권의 정권 재창출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당은 ‘당권-대권 분리’ 등 당 개혁을 단행했고, 정치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었다.

박근혜 후보 역시 나름대로는 당 쇄신을 위해 노력했고, 금년 4월의 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총선 이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천 헌금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박 후보 역시 미래지향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정치 신인이라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인기 하락은 여당의 박 후보에게는 약점이다.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의 가장 큰 공통점은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일화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다 야권 후보들은 노무현 후보처럼 부산·경남(PK) 출신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PK의 정치 성향은 많이 변했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최소한 10퍼센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 야권 후보들이 PK의 양대 명문인 경남고교와 부산고교 졸업생이라는 점도 야권에 유리한 대목이다.

그리고 금년 대선 역시 200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야권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데는 김대업에 의한 ‘병풍(兵風)’이 크게 작용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에 대한 야권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의 인권 탄압에 대한 박 후보의 태도 여하가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박 후보로서는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는 악재이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실패는 후보 스스로가 잘못한 점도 있었지만, 이미지와 캠페인 능력 면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민주당 등 야권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지만, 새누리당보다는 좀 더 깨끗하고 개혁적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변신에도 능하다. 새누리당이 여당이자 제1당이라는 점도 더 큰 책임을 추궁당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0년 동안 당 이름이 바뀐 것 말고는 특별히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 국회의원들의 얼굴은 엄청나게 변했지만, 당 체질은 그때 그대로인 것이다. 이런저런 변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웰빙 정당, 부자 정당, 노쇠 정당, 동원(動員)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 정당의 낙인 또한 민주당에 비해 유권자들에게 더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대선에 있어 새누리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캠페인 능력의 부족이다. 야권은 ‘선거에는 귀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누리당에 비해 캠페인 능력이 뛰어나다. 야권은 꾸준한 학습과 토론을 통해 시대 흐름이나 정세를 바라보는 눈이 새누리당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권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어 응집력과 집중력이 더 강한 편이다. 대한민국의 비주류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대해 공세를 펴기에 유리하다는 점도 있다.

근본적인 차이는, 야권은 공중전에 능하고 캠페인 조직을 공중전 중심으로 운영하는 데 비해 새누리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직 파트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중복되는 기능도 부지기수이고, 한 사람이 복수의 직함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위인설관(爲人設官)의 조직 형태이다. 반면에 박근혜 후보의 공보 기능과 메시지 기능은 취약하다. 그런데도 핵심 역량들을 조직 파트 등 외곽에 배치해놓고 있다.

요컨대 표를 위한 조직인지, 집권 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조직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허점투성이의 캠페인 조직이다. 그래서 득표 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득력에서도 열세이지만, 활동력 역시 뛰어나지 못하다. 야권은 표가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 조용히 설득하는 반면에, 새누리당은 사진 찍는 일 따위에 더 열중하는 편이다. 또 활동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입당원서나 입회원서를 받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새누리당의 구태의연에는 박근혜 후보의 책임도 있다. 박 후보가 2004년부터 2년 동안 당 대표를 지냈고, 지난 1년 동안도 사실상 당 대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기에 처한 당을 구했다는 공적만큼은 인정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의 체질을 바꾸지 못했다. 특히 선거대책위원회의 구성은 전적으로 박 후보의 몫이다. 그래서 박 후보의 정치 개혁안에 대하여 유권자들이 공감할 것 같지는 않다.

일전에 언급했듯이,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 패한 직후에 있었던 은퇴 기자회견에서 “진작 젊은 참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과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후보가 노회한 중진 정치인들에 둘러싸여 판단을 그르쳤다는 얘기이다. 대세론에 빠져 있던 측근들이 집권 후의 입지를 생각해서 이 후보에게 용비어천가를 불러대기에 바빴던 것이다.

지금 박근혜 후보의 모습은 어떤가? 몇몇 측근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이회창 후보와 닮았다. 박 후보의 몇몇 보좌진이 중진 국회의원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다. 뒤늦게 통합 모드로 선거 조직을 변형했지만, 실제로는 핵심 측근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걸 나무랄 수만은 없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그동안 상황 판단을 잘못해 왔다는 점이다. 박 후보 주변에 ‘그 때 그 사람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것도 좋은 일면이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대세론에 심취해 있다가 막판 역전패를 당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대세론에 빠져 있다. 그래서 그동안 경쟁력을 키우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줄·푸·세’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정책 노선으로 급선회한 결과물은 있지만, 그 밖에 특별히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그런 정책 노선의 전환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지만, 박 후보의 브랜드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주변에서 대세론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절박감이나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약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해서인지 승리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휩싸여 있다. 그런 공감대의 부족은 새누리당의 ‘철학의 빈곤’에다 박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그들에게 참여 동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인간은 흔히 작은 새처럼 행동한다. 눈앞의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머리 위에서 매나 독수리가 내리 덮치려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참새처럼 말이다.”고 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명심해야 할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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