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는 대선 후보들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철학자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자유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이라고 해서 그 밖의 어떤 것보다 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절대적 자유는 넌센스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시장의 자유와 함께 그 한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중진국의 윗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개의 수레바퀴가 비교적 잘 굴러 왔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때그때마다의 운영 원리는 조금씩 달랐다. 산업화 초기에는 정부 스스로 5개년 경제계획을 세우고 직접적인 생산자 역할을 하는 등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세계화와 개방화로 나아가면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 시점에서도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국가는 법령이 잘 지켜지는지를 잘 감시하고, 경제 주체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거기다 앞서 인용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나와 있는 기능들을 수행해야 한다. 즉 ①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②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③ 시장의 지배력과 경제력의 남용 방지 ④ 경제 주체 간의 조화 등 경제 민주화의 수행자로서의 역할이다.

이번 대선 들어 경제 민주화가 화두로 떠올라 있다.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가 헌법에 엄연히 명시되어 있고, 각종 법령들이 그걸 뒷받침하고 있는데도 경제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울러 퍼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만큼 헌법과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제 민주화 과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첫째,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이다. 우선, 지역 간 불균형이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핵심이다. 수도권으로의 집중 현상은 오래 된 일이지만, 지금도 그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도시 지역으로의 인구 집중과 농·어촌 지역의 황폐화로 도시는 도시대로 농·어촌은 농·어촌대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이 많은 도시 인구를 먹여 살릴 동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 도시와 농·어촌 사이의 불균형은 산업구조의 불균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1차-제2차-제3차 산업 간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이다. 대한민국은 ‘다이아몬드 형 사회’에서 ‘피라미드 형 사회’로 바뀐 지 오래이다. 중산층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사회적 위화감을 넘어 사회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었지만, 이제 그런 기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계층이 고착화된 것이다. 희망의 상실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서유럽처럼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는 편도 아니다.

셋째, ‘시장의 지배력과 경제력의 남용 방지’이다. 이것은 주로 재벌에 해당한다. 영국의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재벌(chaebol)’이란 용어가 등재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재벌은 세계적으로 독특하다. 다른 나라에도 독과점의 폐단이 있지만, 우리나라 재벌들의 지배력은 막강하기 짝이 없다. 소수의 지분으로 황제처럼 군림하고, 돈이 된다면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과 편법이 자주 발생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1차 하청업체와 2차 하청업체 등으로의 수직적 불공정 관계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넷째, ‘경제 주체 간의 조화’이다. 먼저,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문제’이다. 이 구조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현상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노사관계는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민주화의 진전과 노동운동의 발전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은 많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단결권은 여전히 열악하다. 거꾸로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힘이 남아돌고 있다. 세대 간 기회의 간극도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이와 같이 경제의 불균형과 불공정은 심각하다. 이러한 불균형과 불공정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강자들 또한 언젠가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법과 원칙이 훼손되고, 사회적 안정성이 흔들림으로써 경제 발전에 저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의 존립 기반마저 무너진다면 모두가 패자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소중한 자산인 신뢰성이 하락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약육강식이 곧 시장경제는 아니다. 시장에서의 경쟁의 결과 승자와 패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한 번 패자라고 해서 영원한 패자가 되는 것은 시장경제의 참 모습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패자도 승자가 될 수 있는 열린 기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모습이 많이 퇴색되었지만,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 한때 각광을 받았던 것도 미국 사회의 개방성과 많은 기회 때문이 아니었던가!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자본주의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카지노 자본주의’로 가라는 법은 없다. 서유럽 사회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좋은 모델이 되는 것은 거기는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나눔과 절제 그리고 휴머니즘이 어느 정도는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아메리칸 드림’과 대비되는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란 책을 쓴 바 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심한 불평등을 용인하는 사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 사회는 박정하고 폭력적일 것이며, 호의보다는 적의가 흐르는 사회로 인식될 것이다.”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경제 민주화는 재벌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제 민주화의 범위는 대단히 넓다. 다음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분명한 방향과 로드맵을 갖고 그걸 제대로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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