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안철수 후보의 위기는 시작되었는가

 

영국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는 “비전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당수의 우리 국민들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안철수 후보가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는 다른 시야에서 시대 흐름을 통찰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망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즉 남다른 비전을 갖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현 시점에서 볼 때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우려는『안철수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이 책은 안철수 후보에게 균형 감각이 있고, 각 분야의 상식이 풍부하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가 남다른 안목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 대중들에게 읽히기 쉬운 책인지는 몰라도, 지식인이나 여론 주도층이 보기에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비전에서 차별화를 하지 못한다면 인적 구성과 캠페인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할 터인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매력 감소의 요인이 되고 있다. 안철수 캠프는 일부의 측근들과 민주당 및 새누리당에서 끌어들인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름대로는 역량을 인정받은 사람들이겠지만, 대체로 새로운 정치를 주창하는 안철수 후보의 구상에 들어맞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캠페인 방식 또한 새로운 것이 별로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네거티브 캠페인도 안철수 후보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다. 양당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전락하면 안철수 후보의 존재이유가 빛을 발휘하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나 중립적 유권자들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로 양극화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안철수 후보에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안철수 후보의 포지셔닝(positioning) 문제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다시피 포지셔닝은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이다. 포지션(position)이란 ‘제품이 소비자들에 의해 지각되고 있는 모습’을 말하며, 포지셔닝이란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자사 제품의 바람직한 위치를 형성하기 위하여 제품의 효능을 개발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활동’을 말한다. 제품 마케팅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에서도 포지셔닝은 대단히 중요하다.

안철수 후보는 나름대로의 ‘성공 신화’를 가진 대표적인 엘리트이다. 강남 학부모들이 가장 훌륭한 ‘역할 모델’을 삼을 정도이다. 대체로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인 것이다. 반면에 안철수 교수의 지인들은 진보 쪽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캠프 인사들도 대체로 그렇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 스스로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말해 왔다. 정치 개혁이란 의제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진보와 보수 성향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안철수 후보가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아우른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대단히 낮거나 존재감이 떨어질 때의 얘기이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후보는 여전히 건재하다. 문재인 후보가 특출 나서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의 지지부진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에게는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언필칭 ‘정통 민주 정당’인 민주당이 뒷받침을 하고 있고, 10만 명이 넘는 노사모라는 막강한 우군 조직이 있다. 반면에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유동층이다. 적어도 세력 측면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필적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진보와 보수에 걸쳐 있는 데 만족해서인지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포지셔닝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도 진보도 아니라면, ‘제3의 길’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부각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를 ‘중간의 길’ 아닌 ‘새로운 길’이라고 해석하는데, 안철수 교수는 자신의 길이 ‘새로운 길’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당초의 주장에 맞는 일관성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며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독자 출마냐 후보 단일화냐의 딜레마도 안철수 후보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안철수 후보의 전략은 단일화를 하더라도 최대한 시간을 늦추는 것이다. 단기필마로 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알릴 시간이 필요하고, 단일화의 프레임에 일찍 갇히면 갇힐수록 자신이 야권 단일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에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져 야권 지지자들이 자신으로의 후보 단일화를 추동해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하다. 오히려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없는 이상, 후보 단일화를 하더라도 그 열매는 확고한 지지 세력을 가진 문재인 후보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안철수 후보가 어떤 히든카드로 승리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 불리함을 안고 후보 단일화에 참여할 것인지, 독자 출마를 할 것인지 아니면 도중하차할 것인지 하는 선택 혹은 결단이다.

안철수 후보가 예상외의 고전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신상품의 유통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경향 때문이다. 연예인들 인기의 거품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참신한 이미지를 잘 유지한다면 유통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안철수 후보의 새로움은 출마 선언 시점에 멈추어져 있어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작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 1년이 넘은 시간 동안 국민 대중들에게 완전히 노출된 셈이다. 바꾸어 말해 특별한 무엇이 없는 이상, 이제 식상할 때가 된 것이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역시 식상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두 후보에게는 기득권의 이점이 있다. 신참자인 안철수 후보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비유컨대, 신상품이 독과점 품목을 밀어내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품의 질, 디자인과 포장이 우선 뛰어나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성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의 평판과 입소문, 광고 등을 통해 유력한 브랜드 파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성(城)을 지키는 일보다 성(城)을 빼앗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당초에는 안철수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면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리고 이러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안철수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로서 박근혜 후보에게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나리오는 수정되어야 할 만큼 안철수 후보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제18대 대선일은 두 달 가량 남았다. 이 시간 동안 대선 판도는 여러 번 출렁거릴 것이다. 따라서 안철수 후보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이다. 다시 한 번 자신은 왜 출마하게 되었는지,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요구와 기대는 무엇인지, 자신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자신은 무엇으로 다른 후보와 차별화를 할 것인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명쾌한 전략과 유연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 때 안철수 후보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의 CEO를 지낸 제프리 이멜트는 “지도자가 구름 속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고, 땅에서만 있으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 두 가지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훌륭한 지도자이다.”라고 했다. 국가 경영에서도 그렇겠지만,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하는 후보, 신념과 용기를 두루 갖춘 후보가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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