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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이호기자] 흔히 백제의 의자왕이라고 하면 삼천궁녀를 거느리며 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던 우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과연 의자왕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의 인물이었을까?

의자왕은 백제의 제31대 국왕이며 마지막 왕이다. 성은 부여씨 이고 휘는 의자며 마지막 왕이기 때문에 시호는 없다. 의자왕은 즉위 이후 유교정치 이념을 신봉하였고 왕태자 시절부터 아우들과 우애가 깊고 사려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중국의 증자처럼 학문과 도덕이 뛰어나다고 붙인 이름)라고 칭송을 받았다.

의자왕은 642년(의자왕 2년)에 친위 정변을 일으켜 내좌평 기미 등 40여 명의 유력 귀족들을 섬으로 추방하여 왕권 확립을 이룩하였다. 또한 이러한 왕권 강화책에 성충과 흥수를 하옥하는 등 강경책을 썼으며, 사택지적과 같은 유력 귀족들을 낙향하게 하여 귀족들과의 불화의 씨를 만들었다.

또한 이런 정변으로 인한 불안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연합, 눈엣 가시 같은 신라를 공격하여 신라의 미후성을 비롯한 40여 성을 빼앗는 등 압박을 하였으나 이는 신라가 당에 의존하여 백제를 멸망시켜야 하는 이유가 되어 버렸다.

 

이렇듯 백제의 국내외 적으로 실속 있는 행보를 보였던 의자왕 이었으나 재위 15년(655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태자궁을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지은 것을 시작으로, 16년(656년) 3월에는 궁인과 더불어 밤낮으로 사치스러운 잔치를 매일 열면서, 이에 대해 간하는 좌평 성충(成忠)을 옥에 가둬버리기까지 한다. 옥사하면서 성충은 앞으로 반드시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육로는 탄현(炭峴)에서, 수로는 기벌포(伎伐浦)에서”막으라는 말을 왕에게 올렸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17년(657년)에는 서자 41명을 모두 좌평으로 임명하고 식읍(국가에서 왕족·공신 등에게 지급하던 일정한 지역)을 내린다. 이것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귀족의 재물을 왕족의 재물로 편속시키기 위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이렇게 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귀족들과의 갈등과 반목으로 발달이 되면서 백제의 국론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이때를 틈타 백제에 압박을 받아오던 신라는 당에 군사를 요청하여 소정방이 13만 당군을 이끌고 덕물도(인천 덕적도)에 도착하게 된다. 더불어 신라도 5만 군사를 동원하여 김유신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탄현(대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신라군은 황산벌(논산)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를 무찌르고 사비성으로 진격하였다.

의자왕 통치 후반에 귀족들이 분열되고 정사가 크게 혼란스러웠던 상황인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쉽게 항복하게 되었다.

그 후 의자왕은 왕자들과 대신 88명을 포함하여 백성 1만 2천 명과 함께 당의 낙양으로 압송, 낙양의 조당에 포로로서 바쳐져 당 고종 앞에서 문책을 듣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의자왕은 그 해에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백제가 멸망하게 될 당시, 의자왕이 술과 여흥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상징적 존재로 낙화암에서 투신한 3천 궁녀가 거론되고 있다. 현재도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이 마지막까지 군대를 보내어 싸웠다고 하고 있으며 술과 여흥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3천 궁녀는 윤승한이 지은 소설 김유신(1941년)에서 최초로 언급되었다. 이는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을 영웅화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의자왕을 폄하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초반에는 해동증자라는 칭송까지 들으며 왕권의 강력함과 신라에 대한 압박까지 훌륭하게 했던 의자왕. 하지만 후반대에 들어서 어지러운 정치로 인해 나·당 연합군에게 손쉽게 항복하게 된 점은 의자왕의 훌륭했던 부분까지 모두 덮여 버리는 안타까운 허물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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