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 각본가, 기업가인 ‘조지 루카스’. 대표작으로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있으며 영화&TV 제작사 ‘루카스필름(Lucasfilm)’, 게임 제작사 ‘루카스아츠(LucasArts)’ 등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사고로 인생 목표가 바뀌다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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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루카스는 카레이싱과 B급 SF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카레이서를 꿈꾸며 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지하 경주로와 차고에서 보냈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레이싱에 흥미를 잃게 된다. 카레이서의 꿈을 접고 머데스토 전문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등을 공부하다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편입해 훗날 할리우드에서 함께 활동하게 될 여러 중요한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동기들이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다.

자신의 회사 ‘루카스필름’ 설립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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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루카스는 절친한 친구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American Zoetrope)’라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대학 시절 만들었던 습작 <THX 1138>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했다. 그러나 영화는 실패를 맛보고 회사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개인 제작사 정도로 축소된다. 실패를 경험한 루카스는 코폴라와 헤어지고 자신의 회사인 ‘루카스필름’을 세우고 영화 <청춘낙서>를 만든다. <청춘낙서>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최고 흥행작 ‘스타워즈’ 탄생

[사진/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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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낙서>를 좋아했던 폭스(Fox) 스튜디오의 ‘알랜 라드’는 루카스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루카스를 지원한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루카스가 연출하고 역대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스타워즈>가 탄생하게 된다. <스타워즈>의 대히트로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이때 장사 수완을 발휘해 자신의 감독 봉급을 깎는 대신 영화 프랜차이즈의 판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이후 영화 프랜차이즈 산업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프로듀서로 참여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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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후속작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에서는 감독으로서의 일이 너무나 힘든 것임을 느꼈다며 감독직을 선배 감독 ‘어빈 커슈너’에게 맡기고 프로듀서로서 참여했다. <스타워즈> 말고도 그의 커리어에서 대작이라 불리는 영화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감독은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는 루카스가 맡았다.

게임 산업에도 진출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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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는 게임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루카스아츠’라는 게임 제작사를 발족하고 초기에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개발사 ‘아타리’와 협조하여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타리 게임기용 게임과 액티비전/에픽스를 통해 PC용 게임을 유통하다가 어드벤처 게임 ‘공포의 저택’을 발매한 것을 시작으로 ‘작의 모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등 명작 어드벤처 게임을 차례로 발매했다. 뭐니 뭐니 해도 루카스아츠의 가장 유명한 게임은 <스타워즈>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하며 루카스아츠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몇 명의 직원만 남겨두고 게임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영화제작자 겸 감독이지만 사업까지 하며 부자의 반열에 오른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시리즈 하나만으로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지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더불어 영화계에서만큼은 그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현재도 영화를 넘어 소설, 만화, 게임 등 무수히 많은 문화 콘텐츠를 생성하며 문화적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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