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 각본가, 기업가인 ‘조지 루카스’. 대표작으로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있으며 영화&TV 제작사 ‘루카스필름(Lucasfilm)’, 게임 제작사 ‘루카스아츠(LucasArts)’ 등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사고로 인생 목표가 바뀌다
어릴 적 루카스는 카레이싱과 B급 SF 드라마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카레이서를 꿈꾸며 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지하 경주로와 차고에서 보냈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레이싱에 흥미를 잃게 된다. 카레이서의 꿈을 접고 머데스토 전문대학에서 인류학, 사회학 등을 공부하다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편입해 훗날 할리우드에서 함께 활동하게 될 여러 중요한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동기들이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다.
자신의 회사 ‘루카스필름’ 설립
대학을 졸업한 루카스는 절친한 친구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American Zoetrope)’라는 영화사를 설립하고, 대학 시절 만들었던 습작 <THX 1138>을 극장판으로 다시 제작했다. 그러나 영화는 실패를 맛보고 회사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개인 제작사 정도로 축소된다. 실패를 경험한 루카스는 코폴라와 헤어지고 자신의 회사인 ‘루카스필름’을 세우고 영화 <청춘낙서>를 만든다. <청춘낙서>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최고 흥행작 ‘스타워즈’ 탄생
<청춘낙서>를 좋아했던 폭스(Fox) 스튜디오의 ‘알랜 라드’는 루카스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루카스를 지원한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루카스가 연출하고 역대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스타워즈>가 탄생하게 된다. <스타워즈>의 대히트로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이때 장사 수완을 발휘해 자신의 감독 봉급을 깎는 대신 영화 프랜차이즈의 판권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이후 영화 프랜차이즈 산업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프로듀서로 참여
<스타워즈>의 후속작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에서는 감독으로서의 일이 너무나 힘든 것임을 느꼈다며 감독직을 선배 감독 ‘어빈 커슈너’에게 맡기고 프로듀서로서 참여했다. <스타워즈> 말고도 그의 커리어에서 대작이라 불리는 영화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감독은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는 루카스가 맡았다.
게임 산업에도 진출
루카스는 게임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루카스아츠’라는 게임 제작사를 발족하고 초기에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개발사 ‘아타리’와 협조하여 비디오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타리 게임기용 게임과 액티비전/에픽스를 통해 PC용 게임을 유통하다가 어드벤처 게임 ‘공포의 저택’을 발매한 것을 시작으로 ‘작의 모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등 명작 어드벤처 게임을 차례로 발매했다. 뭐니 뭐니 해도 루카스아츠의 가장 유명한 게임은 <스타워즈>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다. 그러나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하며 루카스아츠가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을 관리할 몇 명의 직원만 남겨두고 게임 스튜디오를 폐쇄했다.
영화제작자 겸 감독이지만 사업까지 하며 부자의 반열에 오른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 시리즈 하나만으로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지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더불어 영화계에서만큼은 그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현재도 영화를 넘어 소설, 만화, 게임 등 무수히 많은 문화 콘텐츠를 생성하며 문화적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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