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영등포구 문래동)] 시간은 야속하다. 살아 있건 그렇지 않건 구분하지 않고 낡게 하고, 불필요하게 만든다. 그 야속한 시간 속에 과거에는 꼭 필요했던 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게 만든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꼭 필요해 활기를 띄던 분야가 쇠퇴하고 해당 산업이 발달했던 지역도 함께 생기를 잃게 된다. 그러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은 것,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좋은 사례는 여럿 있다. 서울 영등포구의 문래동이 대표적으로, 방직공장과 철공소가 많았던 지역이 문화와 맛의 상징인 ‘창작촌’으로 탈바꿈 되었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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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의 본래 1930년대 군소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문래’라는 지역명 역시 방직공장을 상징하는 ‘물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과거에는 문래동에 철공소가 밀집해 있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가격이 저렴한 중국한 부품과 면직 등이 대규모로 수입되면서 문래동의 방직공장과 철공소는 경쟁력을 잃고 하나둘 사라져갔다. 활기차게 돌아가던 방직공장과 철공소의 기계음은 사라져갔고, 동네는 생기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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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공, 조작, 문학, 그림 등 문화계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가격이 싼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폐업한 문래동 철공소와 방직공장을 찾아 작업 공간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이곳에서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이 늘어갔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멋과 맛을 보유한 술집과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공소와 방직공장이 문을 닫고 조용해진 문래역 일대 골목골목에는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소문에 소문을 타고 이곳을 멋과 맛을 감상하기 위한 관광객이 하나 둘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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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재 문래동 ‘창작촌’이라는 이름의 골목 골목 안에 조각, 일러스트, 서예,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공간이 들어서 있고, 크고 작은 맛과 멋이 가득한 식당과 카페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특히 문래동 철공소와 방직공장 등 과거의 형태는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래동 ‘창작촌’만의 특색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한 필수 관광지로 자리 잡으면서 외부인들의 유입도 상당하고, 이를 맞이하기 위한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일정, 내용은 변동될 수 있음. 해당 지자체 문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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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의 산업문화가 배어있는 현대와 과거가 한 대 뒤섞인 문래동 ‘창작촌’. 이곳의 맛과 멋을 오감으로 느끼기 위한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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