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가 왕으로 될 수 있었던 '인조반정'이란? [지식용어]
인조가 왕으로 될 수 있었던 '인조반정'이란? [지식용어]
  • 보도본부 | 이연선 pro
  • 승인 2015.02.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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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신승우] 인기리에 종영한 KBS2 드라마 ‘왕의 얼굴’과 올 4월 방영예정인 MBC 대하사극 ‘화정’에서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인조반정’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조반정은 1623년 이귀, 김유 등 서인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북인을 몰아낸 후 인조를 왕위에 앉힌 사건을 말하는데 역성혁명이 아닌 ‘반정’(성리학적 기준에서, 옳은 정치로 돌이킨다는 뜻)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광해군과 북인들은 임진왜란 시기 의병 활동으로 왜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워 임진왜란 후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북인정권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치 노선인데, 그들의 노선은 순수 성리학자들과는 다르고, 학문적 다양성 때문에 정권의 결집력이 취약했습니다.

또한 여기에 전쟁의 폐허를 복구해야 하는 일과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민생해결, 임진왜란을 틈타 만주에서 힘을 키운 여진과의 외교 관계들 모두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인 정권의 가장 큰 짐은 광해군의 동생인 영창대군의 존재였는데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선조의 적자였기 때문에 후궁의 소생이였던 서자 광해군의 정통성에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결국 눈엣가시였던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영창대군을 귀양 보낸 뒤, 죽여 버렸는데 그 결과 ‘폐모살제(어머니를 유폐하고 동생을 죽임)’를 명분으로 1623년의 인조반정이 일어났습니다.

인조는 인조반정을 통해 정권을 잡은 이후 광해군 때 사용했던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 실리외교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을 취하다 1627년 후금의 침입을 받은 정묘호란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이 보여준 친명적(親明的) 태도는 1636년 후금에서 국호를 청으로 고친 태종이 10만 대군으로 침입해 조선을 굴복시킨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인조가 인조반정으로 왕으로 오른 이후 보여준 무능력한 민심수습, 국정수행능력, 외교관계능력들은 인조를 포함해 당시 백성들을 모두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조가 일으킨 인조반정이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닌 권력을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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