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무엇이 문제인가

 

 

새누리당, 무엇이 문제인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적의 너무나 어설픈 실수 덕으로 승리를 얻은 군대는 당장 그 승리에 우쭐해져서 다음 싸움에서는 고배를 마실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금언이야말로 지금의 새누리당 상황에 매우 잘 들어맞는 게 아닌가 싶다.

 

대선을 불과 두 달여 남겨 놓은 시점인데도, 새누리당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백가쟁명 식의 해법이 난무하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제19대 총선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당시로서는 제1당은커녕, 100석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큰 위기에 내몰린 새누리당이었다. 그 승리는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잘못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그걸 망각했다. 새누리당이 지난 6월에 ‘국회의원 특권 폐지 6대 쇄신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기대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새누리당은 그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공천 헌금 의혹’ 등 새누리당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비리 의혹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발표하는 정치 쇄신안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국민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작년 11월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이후 당권을 재장악한 박근혜 후보 진영 또한 안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도로 총선 승리를 이끌어낼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 승리가 가진 의미를 알아차렸더라면 보다 겸손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 진영은 대선 후보 경선 규정 논란 과정에서 ‘원칙’이란 이름으로 논의 자체를 봉쇄해버렸다. ‘완전국민경선제’를 주장하는 비주류 후보들의 논지에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논의의 필요성은 충분히 있었다. 게다가 어떤 규정을 도입하든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본선이 아니라 경선에 집착한다는 의심을 살 만큼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아집은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는 자충수였다. 처음부터 좀 더 유연하게 접근했더라면 오히려 박수를 받았을 일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되로 줄 일을 말로 주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박정희 정권 때의 실정(失政)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를 포함한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이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딸’로서가 아니라 ‘유력 대통령 후보’로서의 생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과 기자회견을 통하여 이 문제를 봉합했지만, 국민들의 뇌리에 무엇이 남았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새누리당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 우선, 새누리당은 시대 흐름에 둔감한 편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시대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등 당 지도자들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재단(裁斷)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나마 소통하는 대상은 핵심 지지층 중심이다. 그래서 핵심 지지층의 견해를 여론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가끔은 시류에 편승하려고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엘리트주의 이미지가 강하다. 국회의원 대다수가 엘리트 출신이다. 좋은 집안, 좋은 학교 출신에 많은 재산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특성이다. 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반감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엘리트 혹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정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들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새로운 노선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하고 공감하는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폐단인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리더십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상층부의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지난 4월의 총선 때였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새누리당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인재들을 공천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있는 계보 사람들을 뽑기에 급급했다. 공천 헌금 의혹 사건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국회의원들로 다음 시대를 열겠다고 착각한 것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친박(親朴) 지도부 교체’를 건의하고 있다고 한다. 진작 캠프 구성을 통합형으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바꾸어 본들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캠프 자리를 어떻게 구성하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박근혜 후보가 당 안팎의 인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들과 함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새누리당의 고질병이 대선 국면 이후에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 들어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대통합은 그 당위성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너무나 소중한 국가적 과제이다. 다만,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견지해 온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일, 과거사로부터 파생된 여러 문제들을 해소하는 일, 반대 진영의 합리적인 주장을 경청하는 일, 힘들게 살고 있는 서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일 등이 국민대통합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민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민심을 따르면 실패하지 않고, 민심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의 위기는 민심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그렇다면 그 처방도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몇몇 핵심 측근들의 ‘용비어천가’에 휘둘리지 말고, 민심의 바다에서 나오는 고언을 들을 때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 캠페인을 이런저런 공약을 쏟아내기보다는 국민의 쓴 소리를 경청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 시선뉴스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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