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 전쟁이 잠시 멈췄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맺었다. 할머니가 봄이 오면 집에 오라고 하셨는데, 겨울이 다시 왔는데도 집에 갈 수 없었다.

엄마한테 소포가 왔던 날은 잊을 수가 없다. 미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온 것이었다. 엄마는 피난을 내려오다 동생들이 얼어 죽을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셨다. 소포 안에는 사진과 봉선화 씨앗 그리고 엄마가 불러서 녹음한 ‘봉선화’ 녹음 테이프가 있었다. 그날 밤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도 내지 않고 우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만 그리워하다가 할아버지가 되셨다. 1995년 12월 25일,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어머니를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책 <엄마에게> 中)

앞서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에 대한 안타까운 가족사를 소개했습니다. 이산(離散)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최근에는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량 난민 사태가 발생했는데, 우리 역시 70년 전 6.25전쟁으로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일천만 명이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국제법인 제네바협약은 이해충돌 당사국이 이산가족 재회, 서신 교환 등에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과 북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21차례의 대면 상봉과 7차례의 화상 상봉을 한 것이 전부입니다.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남북적십자회담을 북측에 최초로 제의합니다. 1971년 예비회담과 1972년 본회담을 성사시키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합니다. 이후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이 성사(남 : 86명, 북 : 71명)되었고, 2000년에 역사적인 첫 대면 상봉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2018년 이후에는 상봉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그리고 기약 없는 헤어짐. 남과 북은 제네바협약에 따라 떨어진 가족들이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적십자사와 통일부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약 23,000편의 영상 편지를 제작했습니다. 이산가족이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이산가족의 생전 모습을 담아 기록하고, 향후 북측과 합의가 되면 북녘 가족들에게 영상으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통일부에 등록된 이산가족은 133,475명. 이 중 생존자는 47,577명. 70세 이상의 고령은 86%에 육박합니다.(2021. 07. 31. 기준) 추석이 다가오면, 언제 만날지 기약을 알 수 없는 이산가족들은 혹시나 모를 상봉 재개 소식에 귀를 기울입니다. 제네바협약과 적십자정신을 기억하며,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제작 협조 : 대한적십자사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