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윤수 pro]

▶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주코프(Гео́рг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Жу́ков)
▶ 출생-사망 / 1896. 12. 01. ~ 1974. 06. 18.
▶ 국적 / 소련
▶ 활동 분야 / 군인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요한 소련군 지휘관인 ‘주코프’. 독소전쟁에 참전한 소련군 장성 중에서 가장 빛나는 공훈을 세우고 가장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떡잎부터 달랐던 장군의 면모
1896년 12월, 주코프는 모스크바 남서쪽 칼루가주 스트렐코프스카 촌락 농가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교육만 받고 가죽직공 일을 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사로 징집되었다. 그러나 신병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수료 후 부사관 학교에 들어가 다시 교육을 받았다. 

엄격한 훈련과 우수한 지휘력
이후 동부전선에 기병으로 배치되었고 용맹을 발휘하며 적지 않은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유행하던 티푸스에 걸려 1년여 요양해야 했지만 회복 후 부대 내의 정치장교의 권유로 장교 교육과정을 받은 뒤 장교로 임관했다. 장교로써 두각을 나타내며 30대에 기병 여단장까지 승진했다. 주코프는 엄격한 훈련으로 이름이 높았고 우수한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할힌골 전투의 승리
1939년 몽골-만주 접경 지역 국경구획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소련군과 일본의 관동군은 산발적인 교전을 벌였다. 소대급의 단순한 충돌에서 소련과 일본의 충돌로 발전했고 이 전투에 주코프가 파견되었다. 소련군을 지휘하며 일본 1개 사단을 전멸시키는 등의 큰 타격을 주고 ‘소련 영웅’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대장으로 승진했다. 훗날 이 전투는 할힌골 전투라고 불리게 되었다.
 

전선군 사령관으로 파견
할힌골 전투에서 명성을 얻은 주코프는 스탈린의 주목을 받아 1940년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다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주코프는 일시적으로 후퇴하더라고 병력과 장비를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스탈린에게 건의하지만 스탈린은 이를 무시해버렸다. 스탈린은 물러서지 말라는 명령만 내렸고 자신의 의견이 계속 묵살당하자 자진해서 총참모장을 사임하고 전선에 나가기를 스탈린에게 건의했다. 스탈린은 이를 받아들였고 레닌그라드 전선군 사령관으로 파견했다.

원수로 승진
주코프는 사령관에 부임하자마자 전의를 상실한 장교들을 해임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레닌그라드의 무너지던 군기를 바로 잡았다. 결국 레닌그라드 남쪽 교외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정지시켰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독일 제6군을 완전히 박살 내 이 공적으로 주코프는 원수로 승진했다. 1945년 1월 독일 본토에 대한 침공을 지휘해 4월에 베를린을 점령해 군인으로 영웅시되었고 전승퍼레이드를 벌일 때 스탈린을 대신해 참여부대의 사열을 받았다.

스탈린의 독재정치에 대해 적지 않은 위협이 되었던 ‘주코프’. 실제 주코프도 지나친 자기 과시 때문에 스탈린의 의심을 샀고 불명예스러운 혐의로 좌천되었다. 스탈린 사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1953년 국방장관 대리, 1955년 국방장관에 취임했고 1974년에 사망했다.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받으며 크렘린 벽묘지에 안장되었고 여전히 소련군 역사상 최고의 명장 가운데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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