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폴로(Polo) 브랜드의 창시자이자 일반인들이 동경하는 상류사회의 스타일을 보편화한 디자이너 ‘랄프 로렌’. 창업주의 이름이자 회사명인 랄프 로렌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다. 창업주인 랄프 로렌은 지난 2015년, 48년 동안 지켜 온 CEO 자리에서 물러나 랄프 로렌 법인의 회장 및 최고창의성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실무를 통해 경영 배우기로 결심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1939년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랄프 로렌은 유년시절부터 패션 감각이 남들과는 달랐다. 미국 부유층 학생들의 스타일인 프레피룩을 즐겨 입거나 당시 인기 스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국풍의 감성을 패션으로 표현해냈다.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패션 관련 판매원 일을 병행하던 로렌은 실무를 통해 경영을 배우기로 결심했고 학교를 자퇴했다.

넥타이 사업의 성공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패션 회사 ‘브룩스 브라더스’를 거쳐 남성 넥타이 제조업체 ‘리베츠 앤 컴퍼니’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며 넥타이 트렌드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 판매를 넘어 디자인 영역까지 발을 넓히게 되었고, 1967년 넥타이 제조업체인 ‘보 브러멜’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디자인한 넥타이에 ‘폴로’라는 이름을 붙여 넥타이 사업을 시작했다. 로렌은 일반 가격보다도 높게 책정했지만 독특한 디자인이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폴로 랄프 로렌’의 런칭

[사진/Flickr]
[사진/Flickr]

디자인이 인기를 끌면서 로렌은 자신감을 얻었고 의류로 제품을 확장해 남성복 라인을 선보였다. 기존의 미국 남성 의류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된 디자인이었으며 아이비리그 스타일이었다. 폴로의 인기는 점점 더 커져갔고 패션 브랜드 ‘폴로 랄프 로렌’을 런칭하게 된다. 남성복의 성공 이후 1971년에는 여성복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고 여성용 테일러드 셔츠를 출시했다. 이는 남성용 사이즈를 여성용 사이즈로 제작한 것으로 이때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채를 들고 공을 치려는 폴로 선수 모습의 로고를 셔츠에 수놓기 시작했다.

브랜드 스펙트럼의 확장

[사진/Wikimedia]
[사진/Wikimedia]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굳힌 로렌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리고 캐주얼부터 프리미엄까지 타깃 시장을 세분화하여 브랜드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1974년에는 중간 가격대의 남성 의류 브랜드 ‘챕스 랄프 로렌’, 1976년에는 소년을 위한 ‘폴로 포 보이’를 런칭했다. 그리고 1978년에는 여성복 ‘웨스턴 웨어 컬렉션’, 1983년에는 ‘랄프 로렌 홈’ 등 수많은 패밀리 브랜드를 런칭했다.

적극적인 광고 활용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사진/'랄프 로렌' 홈페이지 화면 캡처]

로렌은 일반 대중들이 동경하는 상류층의 패션 스타일을 보편화시키고자 노력했으며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함께 제시했다. 그래서 사업을 위해 광고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77년에는 폴로에서 직접 광고 책자를 만들어 고객에게 배포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책자에 ‘패션이 아니라 스타일이다(Style, not fashion)’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등장하여 이후 폴로의 모토가 되었다. 폴로의 영화 같은 이미지 광고는 유명 사진작가 브루스 웨버를 만남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카우보이, 운동선수, 대학생들, 록스타, 오래된 영화의 패러디 등을 통해 미국적 이미지를 완성시켰고 다른 나라의 광고 사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매장 점원 직원으로 출발했지만 세계의 브랜드로 성장시킨 ‘랄프 로렌’. 그에게서 나온 패션에는 옷을 통해 꿈을 디자인하는 그만의 철학이 담겨있다. 한편 암 환자를 돕는 사회 환원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등 기부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이 본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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