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홍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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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의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나는 귄스바흐에서 눈을 떴다. 그날은 성령강림절이었다. 이때 문득 이러한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여기에 대해 나도 무엇인가 베풀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생각해본 끝에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출처 = 위키미디어(Arthur_William_Heintzelman, David Stanley, Freyer Jörg, Perseus1984, Jonathan Martz, Renate007, Oslo Museum, Ji-Elle, Gert Chesi), pixabay, unsplash]

◀MC MENT▶
언젠가는 꼭 남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이 사람. 바로 알베르트 슈바이처입니다. 그는 의사이자 선교사로 인류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로 불립니다. 슈바이처는 학문에 매진하다가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에 아프리카로 갈 것을 결심하는데요. 오늘은 인류의 평화에 기여한 슈바이처의 삶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Arthur_William_Heintzelman, David Stanley, Freyer Jörg, Perseus1984, Jonathan Martz, Renate007, Oslo Museum, Ji-Elle, Gert Chesi), pixaba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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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슈바이처는 1893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4세가 되던 해에 철학 박사, 25세에는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요. 그는 한때 신학부의 정교수로 근무하며 목회도 병행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불리기도 한 슈바이처는 예수와 바울을 연구했고, 대표작으로 불리는 ‘예수 생애 연구사’(1906)와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1930)란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던 신학박사였던 슈바이처는 어느 날 우연히 다른 마을에 갔다가 그 곳에 세워져 있던 아프리카 사람의 석상을 보게 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석상을 보면서 아프리카에는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MC MENT▶
이런 계기로 인해 슈바이처는 서른 살까지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그 이후에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서른 번째 생일에 자신과의 약속대로 아프리카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인류를 위해 의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Arthur_William_Heintzelman, David Stanley, Freyer Jörg, Perseus1984, Jonathan Martz, Renate007, Oslo Museum, Ji-Elle, Gert Chesi), pixaba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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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공부를 마치고 의사 시험에 합격한 슈바이처. 그는 헬레네와 결혼 후 1913년 아프리카 가봉으로 떠나 원주민을 위한 봉사활동을 시작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슈바이처를 요술쟁이라고 부르며 병을 고치기 위해 먼 곳에서도 몰려들었고, 그는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틈틈이 연주회와 강연회를 하며 병원 운영을 위해 필요한 돈을 모았습니다.

슈바이처의 의료 봉사활동은 점차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는 어려운 생활 끝에 큰 병원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란 혼란 속에서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이어갔는데요. 10년, 20년 동안 꾸준히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슈바이처의 노력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Arthur_William_Heintzelman, David Stanley, Freyer Jörg, Perseus1984, Jonathan Martz, Renate007, Oslo Museum, Ji-Elle, Gert Chesi), pixabay, unsplash]

◀MC MENT▶
이렇게 60여 년간 고향을 떠나 먼 아프리카에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본 슈바이처는 ‘밀림의 성자’, ‘세계의 위인’으로 불렸고, 195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노벨상의 상금으로 다시 아프리카에 나환자촌을 세워 흑인들에게 경외와 감사를 표했습니다. 최근까지도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은 인류애를 실천한 슈바이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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