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지난 달 30일 세간의 이목을 모았단 전두환(89)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이날 전 전 대통령은 5·18 헬기 사격 목격자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판결 직후 재판부의 ‘집행유예’ 결정에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재판부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헌법상 ‘일사부재리’ 원칙을 거론했다. 만일 헬기 사격으로 인한 사망자나 부상자가 있더라도 앞서 5·18 전체에 대한 범죄로 처벌받아 헌법상 같은 죄로 다시 처벌받지 않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일사부재리란 어떤 사건에 대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그것이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소송으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재판에서 유죄·무죄의 실체 판결이나 면소(공소가 부적당하다고 하여 소송을 종결시키는 재판)의 판결이 있었을 때에 같은 사건에 대하여 재차 공소를 제기하여 심판을 구할 수 없다는 헌법상 원칙으로, 일사부재리는 실질적 확정력을 지니기에 재판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건에 대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 '일사부재리' [사진/픽사베이]
어떤 사건에 대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확정되면, 그 사건을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 '일사부재리'
[사진/픽사베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최초로 로마법에서 인정되었다. 그 후 여러 논란 끝에 독일의 보통법에서 일시 부정되었다가 19세기에 이르러 ‘개혁된 형사소송’ 이후 다시 확립되었다. 선진국의 민주주의 원칙에 뿌리를 두는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헌법에 담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1항 후단에 이 취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소송법 326조 1호에는 “만일 잘못하여 확정판결이 있었던 사건에 대하여 다시 공소가 제기된 때에는 실체적 소송조건의 흠결을 이유로 면소의 판결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일사부재리는 형사소송법상에만 적용되지 민사소송법상 확정판결에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없다. 이유는 민사소송의 법률효과는 판결이 있은 후에도 새로 발생하고 반대로 소멸하는 등 유동성이 있으므로, 시기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동일 사건이라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민사소송 역시 형사소송과 마찬가지로 이념으로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인정해야 한다는 학설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 일사부재리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있다. 1999년도에 개봉한 액션 스릴러 영화인 ‘더블 크라임’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인 ‘리비’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남편 ‘닉’에 대한 살해 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된다.

그렇게 긴 형량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 리비는 가장 친한 친구인 ‘앤젤라’에게 5살 난 아들 ‘매티’를 입양해 키워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게 된다. 앤젤라는 리비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앤젤라는 매티와 함께 종적을 감추고 연락조차 끊기게 되는데, 리비는 수소문 끝에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닉과 앤젤라가 자작 살인극을 벌인 후 신분을 바꿔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것.

이때 충격에 빠진 리비를 향해 감옥소에서 만난 같은 혐의의 전직 변호사 친구가 한 가지 정보를 말해주는데, 리비가 석방이 되서 닉을 실제로 살해하더라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었다. 리비는 이미 닉의 살해혐의로 유죄를 받았기 때문에 동일 범죄를 저질러도 중복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영화 ‘더블 크라임’은 조작된 살인혐의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바탕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낸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영화 ‘더블 크라임’ 속 일사부재리 상황에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유는 최초 살해 혐의로 수감된 사건의 정황과 석방 후 실제로 전 남편 닉을 살해하는 사건의 정황이 같을 수 없기에 일사부재리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동일 형사사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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