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홍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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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화가 이중섭이 태어난 지 10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이중섭은 ‘비운의 천재 화가’로 남아 있는데요. 험난한 시대를 겪으면서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입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시선뉴스DB,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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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한국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였던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모두 겪었던 이중섭은 전쟁 속에서도 가족과 자신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온힘을 다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거처를 옮겨다니면서 극한 가난을 겪어야 했지만 작품 속에 언제나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있었는데요. 오늘은 화가 이중섭의 예술 세계에 대해 알아봅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시선뉴스DB,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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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림을 그렸다는 이중섭은 어릴 때부터 소를 보고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흰소'가 꼽히는데, 이 소는 백의 민족이었던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흰소’에 등장하는 소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라있는데, 당시 6.25 전쟁 이후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중섭의 다른 소 그림들과 달리 황소의 머리 부분을 확대해 그린 ‘황소’란 작품에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분출하듯 고개를 휘저어 올린 소의 움직임을 포착해, 이중섭만의 탁월한 표현력을 담아냈습니다. 왼쪽으로 향한 황소의 얼굴과 눈빛은 공간을 장악한 느낌을 주고, 코와 입가의 선명한 붉은색과 배경의 붉은 노을은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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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이중섭은 빈손으로 나선 피란길에도 그림도구만은 챙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신혼생활도 잠시였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져 제주도로 피란을 가야했던 그때, 아내와 두 아들 그렇게 네 가족이 함께 했던 제주도에서의 11개월은 이중섭이 죽기 전까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시선뉴스DB,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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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가족’, ‘길 떠나는 가족’, ‘닭과 가족’ 등의 작품에서 이중섭은 자신의 가족을 대체로 누드로 그렸는데, 모호한 배경에 누드로 그려낸 이미지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는 현실의 비극과 차단된 태고적 이상향의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린 가족 그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만날 수 없는 아내와 아들과 다시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애틋한 갈망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죽기 전 일본에 있는 아내와 마지막 4년간 주고받은 편지에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상당합니다. 이중섭이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는 이중섭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요. 특히 이중섭은 편지에 그림을 그려 보냈는데, 글 없이 그림으로만 전한 엽서만 해도 1백여 점이나 됩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시선뉴스DB,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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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던 이중섭은 그림도구조차 살 돈이 넉넉하지 않아 담뱃갑 속에 든 은종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 은종이에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그린 ‘은지화’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꼽힙니다. 그가 은지화에 가장 많이 그린 그림도, 늘 그리워하던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갑니다. 전쟁 속에서 희망을 그린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 그러나이중섭의 애틋한 마음만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그의 가족과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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