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최지민]

▶ 칼 마르크스 (Karl Marx)
▶ 출생-사망 / 1818년 05월 05일 ~ 1883년 03월 14일
▶ 국적 / 독일
▶ 활동분야 /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상 사회 개혁에 큰 영향력을 미쳤고 공산주의 아버지로 불린 칼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민주화 운동에 노동계급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학문을 배우며 교양 있는 청년으로 자란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는 독일의 유대인 기독교 가정에서 7남매 중 셋째로 자랐다. 그가 자라던 곳이었던 독일의 라인주 트리어시는 독일에서 가장 발전한 곳이었는데, 프랑스 혁명군이 점령해 진보적인 이념이 팽배해진 곳이었다. 변호사였던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칸트 철학의 신봉자로 가족들은 그의 영향을 받아 휴머니즘적이고 계몽적인 사상을 배웠다.

마르크스의 집안은 당시 독일에서 이뤄지고 있던 유대인에 대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개신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12살 때 그는 트리어시에 있는 전통적인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빌헬름 김나지움에 입학해 다양한 학문을 수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역사, 철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배우며 교양 있는 청년으로 성장해나갔다.

스스로 ‘헤겔의 충실한 제자’라고 칭한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17살 때 김나지움을 졸업하면서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고찰’이란 졸업에세이를 제출했는데, 이때부터 그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위치가 어느 정도 확립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이후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인간들이 이러한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추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35년 대학에 입학한 마르크스는 인문계 수업을 받은 후, 이듬해 베를린 대학의 법학부로 전학해 법학, 역사학, 철학 등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헤겔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청년헤겔학파로 알려진 박사클럽이란 모임에 참여해 지도자 역할을 맡았다. 그는 스스로 ‘헤겔의 충실한 제자’라고 말하고 다닐만큼 헤겔 철학을 고수했다.

급진좌파의 성향으로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을 받은 마르크스

그러나 프로이센 정부가 자유주의와 청년 헤겔주의를 계속 탄압하면서 한때 교수를 꿈꿨던 마르크스는 꿈을 포기했다. 이후 그는 1842년 급진적인 성향의 언론사였던 라인 신문에 논설을 기고해 사회주의에 관한 시각, 경제에 관한 이야기, 유럽 각국의 우익 정부를 비난하는 등의 내용을 호소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행보로 인해 마르크스가 일하던 라인 신문은 프로이센 당국의 검열에 들어갔고 결국 폐간에 이르렀다. 회의감을 크게 느낀 마르크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새로 창간된 급진좌파 언론 ‘독불연지’에 들어가 공산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표출냈다. 그러나 프로이센 정부의 요청으로 프랑스 정부도 독불연지를 탄압했고 결국 마르크스는 프랑스에서 쫓겨났다.

러시아혁명 등에 영향을 미치며 공산주의 아버지로 불린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결국 1845년 벨기에 브뤼셀로 망명했고, 벨기에에서 당대 정치시사에 관한 글을 쓰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반란모의 혐의를 받아 다시 프랑스로 도망쳤고 계속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1949년 영국 런던에 도착해 남은 생을 보내며 공산주의자동맹 본부를 이끌었다.

자본주의 사상 문화가 스며들었던 당대 기조와 달리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진보적 부르주아들과 합작해 봉건귀족제를 타파하고, 부르주아 민주화 운동에 노동계급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회개혁에 대한 공산주의 사상은 유럽의 노동운동, 1917년 러시아혁명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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