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 / 디자인 최지민] 현대인들에게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며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시대에는 성인이 되거나 혼례를 치르면 남자는 상투를 틀었고 여자도 혼례를 치르면 쪽머리나 얹은머리를 했다.

이렇게 머리카락은 예로부터 어떠한 의식을 드러내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신체의 일부였다. 특히 종교인들에게 머리카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함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동양의 승려들은 머리를 모두 밀었고, 서양의 중세 종교화들의 그림에는 독특한 머리스타일을 한 수도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어두운 색깔의 넉넉한 옷차림에 일부 머리카락만 남겨두고 이발을 한 모습을 보였다. 민머리에 마치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이 머리스타일은 바로 ‘톤슈라’라고 불리는데, 종교적 신념이나 겸손을 나타내는 표시로 삭발례의 일종이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중세 수도사들은 이러한 속 알 머리를 해야 했을까? 현재 가톨릭교회의 경우 성직자들은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성을 금하고 오로지 신앙에만 전념해야 한다. 그러나 중세시대 말까지만 해도 가톨릭교회에서 사제나 수도사도 일반인처럼 생활하며 결혼도 할 수 있었고 이성과 교제할 수 있었다.

그런데 1073년 즉위한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일부 성직자들의 방탕한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교회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수도사들과 사제들의 결혼을 금지했고 금욕주의를 강요했다. 이로 인해 이미 결혼한 수도사들은 강제로 결별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앙에 더욱 정진하고 욕망을 억제시키기 위해 그레고리오 7세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따라하도록 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교를 앞장서 탄압했지만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도중 길 위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선교활동에 나섰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새로운 마음을 먹고 자신을 변화시킨 사도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수도사들에게 걸림돌이 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구약성경에는 머리 털을 모두 깎지 말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난감해진 수도사들은 결국 이러한 성경 내용을 종합해 머리 윗부분만 깎았고 ‘톤슈라’라는 스타일이 탄생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이 스타일은 결국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식적으로 금지시키면서 그 후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한편 특정 교파의 경우 교황의 허가에 따라 금욕의 의미로 톤슈라를 허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통해 자신의 신념이나 개성을 드러냈고,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당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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