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강원 강릉)] 세계 최초 모자 화폐인물 탄생지인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다. 뒤뜰에 검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오죽헌’(烏竹軒)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었다.

ⓒ지식교양 전문채널-시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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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지어진 오죽헌 내의 건물들은 1505년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에 의해 전승되다가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오죽헌과 사랑채를 제외하고 모두 철거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96년 정부의 문화재 복원 계획에 따라 옛 모습대로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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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공간이고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공간인데, 사랑채의 툇마루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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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1788년 정조 임금은 벼루와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들을 궁궐로 가지고 오게 하여 보기도 했는데,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어제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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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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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삶이 묻어있는 오죽헌에서는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오죽헌을 방문한다면 정문 앞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남겨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시선뉴스에서는 여러분의 아름다운 사진을 제공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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