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최지민]

▶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 출생-사망 / 1825년 05월 04일 ~ 1895년 06월 29일
▶ 국적 / 영국
▶ 활동분야 / 동물학자

의학을 공부한 후 동물의 형태와 해부학을 연구한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과학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고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으려 노력했다.

- 의학을 공부한 후 자연주의에 관심을 보인 헉슬리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1825년 영국의 일링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사립학교 교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집안의 재정난으로 인해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후 그는 누나의 집에서 생활하며 왕성한 독서를 통해 고전문학, 철학, 외국어 등을 공부하며 지식을 쌓았다.

이후 헉슬리는 채링 크로스 병원 의학교에서 학위 과정을 마친 뒤 1846년 해군 군의로 들어가 호주 방면으로 항해하면서 바다동물의 생태를 조사했다. 4년간 해상 근무를 하면서 헉슬리는 호주와 남양 지역 해양 동물의 형태학, 비교해부학, 고생물학을 연구했고 자연주의에 관심을 보였다.

- 찰스 다윈의 불독이라 불린 헉슬리

헉슬리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1854년 ‘대양산의 히드로 충류’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동물학자로 인정받아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됐다. 동물을 연구하면서 다윈의 진화론을 접한 후 큰 영감을 받은 헉슬리는 이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특히 1860년 옥스퍼드대에서 열린 다윈의 ‘종의 기원’을 둘러싼 찬반 토론회에서 성공회 주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와의 논쟁 후에 ‘찰스 다윈의 불독’이란 별명이 붙은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헉슬리는 논쟁에서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들은 윌버포스 주교는 진화론 옹호자들에게 조상 중에 원숭이가 있다면 댁들의 할머니나 할아버지 중 어느 쪽 조상이 원숭이냐고 물었다. 이에 헉슬리는 원숭이가 조상이라는 것보다 주교님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 부끄럽다고 대답했고 강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토론은 당시 종교의 힘이 컸던 시대에 충격을 주었고,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실용적 면모를 보인 헉슬리

헉슬리는 종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초경험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이 불가하다는 ‘불가지론자’라는 개념까지 만들며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학교 교육에서 성서를 사용하는 일에는 찬성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빈민 아동에 대한 무상 교육 법안 제정과 각급 학교에서 과학 교과목 채택 등 교육 행정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며 기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여성과 노동자의 임금 문제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 향상에도 힘썼다. 그리고 외국과의 무역이나 식민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며 영국 내부의 정치나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으려 한 헉슬리

헉슬리는 1963년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라는 저서를 발표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문명은 자연의 작동원리를 거스르며 만든 도덕률을 지킴으로써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말년에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탐구 방법론을 ‘과학적 자연주의’라 명명하며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헉슬리는 동물의 해부학을 연구했고, 인간은 진화가 이끄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거대한 종교의 힘에 맞서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과학인의 위상을 확립하려 노력했다. 훗날 헉슬리는 극단적 과학주의자라기 보다는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종교가 아닌 과학적 탐구에서 도덕률을 찾으려 했던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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