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김아련/디자인 최지민]

▶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 출생-사망 / 1920.1.2. ~ 1992.4.6.
▶ 국적 / 미국
▶ 활동분야 / 소설가

어릴 때부터 책의 내용을 각색하는데 재능을 보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 SF 거장으로 떠올랐다.

- 책의 내용을 흥미롭게 각색한 아시모프
아이작 아시모프는 1920년 1월 2일 벨라루스와 국경 지대에 있는 러시아 스몰렌스크 지방의 페트로비치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1923년 공산주의 혁명을 피해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책에서 읽은 내용을 흥미롭게 각색해 이야기해주는 것을 즐겼다.

아시모프는 중학생이었던 11세에 처음 창작을 시도했다. 당시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이 읽은 청소년 소설 시리즈 중 한권을 거의 베낀 미완성 작을 남기기도 했다.

- SF의 황금시대를 열며 3대 거장으로 불린 아시모프
아시모프는 대학생이 된 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즐겨 읽던 SF 잡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에 매호 수록된 소설들에 대해 독자의 입장에서 감상을 적어 투고했다. 그는 당시 잡지사의 편집장이었던 존 W. 캠벨과 친분을 이어가면서 1938년 한 해 동안 10편의 습작을 잡지사들에 투고했다.

아시모프는 <어메이징> 3월호에 단편 ‘베스타 표류’, <어스타운딩> 7월호에 단편 ‘추세’를 투고했다. 그중 ‘추세’는 훗날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 영감을 제공한 작품으로도 유명해졌다. 글을 쓰는 재능을 보인 아시모프는 당시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 3대 거장으로 불리게 됐다. 1930년대와 1940년대까지 동시대에 활동한 이들은 SF의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 SF 분야의 대표 작가로 떠오르다
아시모프는 부모님의 권유대로 1939년 대학 졸업 후 자신의 화학 전공(컬럼비아 대학 생물전공에 입학한 아시모프는 동물 해부 실습 과정에서 혐오감을 느낀 후 화학으로 전공을 옮긴다)을 이어가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이어가면서도 잡지사에 SF 작품을 기고하며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1941년에는 유명한 중편 ‘전설의 밤(나이트폴)’을 발표해 극찬을 받았고 SF 분야의 대표 작가로 자리 잡았다.

아시모프는 보스턴 대학의 생화학 담당 강사로 일하면서 조교수로 승진했지만 SF를 쓰기 위해 강의와 월급을 포기하고 전업 작가로 뛰어들었다. 이후 1950년대 말부터는 과학 논픽션을 집필했고 대중 강연을 시작했다. 또 추리소설과 역사서, 고전 주해 등 다양한 분야의 일반 교양서를 선보였다.

- 무한한 재능을 SF 발전에 기여한 아시모프
평소 자신을 휴머니스트(인본주의자)로 부르며 대중 계몽을 위해 힘썼던 아시모프의 소설은 훗날 수많은 SF 영화와 드라마에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큰 흥행을 거뒀던 ‘스타워즈’와 ‘스타트렉’도 아시모프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그는 평생 동안 편저, 잡지, 칼럼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발표했다. 아시모프의 자서전에 따르면 단독으로 펴낸 단행본은 469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언제나 참신한 아이디어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평생 동안 제대로 된 창작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작 아시모프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재능을 SF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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