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박진아/디자인 최지민] 임시정부수립 101주년인 2020년. 역사와 관련한 영화와 드라마 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100주년이었던 2019년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고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드라마로 화제가 된 동학농민운동. 어떤 운동인지 살펴봅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으로, 1894년 3월의 고부(백산) 봉기(제1차)와 9월의 전주·광주 궐기(제2차)로 나뉩니다.

1894년 4월 전봉준(全琫準)은 김기범(金箕範)·손화중(孫華中)·최경선(崔敬善) 등의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茂長縣)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에 있음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합니다.

전봉준·손화중·김개남의 이름으로 된 ‘무장동학포고문’으로도 불리는 이 창의문에서 과감히 봉기할 것을 요청하자 근방의 10여 읍에서 이에 호응하고, 10여일 만에 1만여 명이 동원된 겁니다. 동학교도와 농민과의 결합은 이때부터 비롯되었고,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봉기의 앞장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전봉준은 같은 해 4월 말 고부·흥덕·고창·부안·금구·태인 등 각처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김개남과 모의하여 고부 백산(白山)에 집결시켰습니다. 이때 일어난 일을 제1차 봉기(반봉건 운동)라고 합니다.

한편 제2차 봉기(반외세 운동)는 1차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입성한 일본군이 내정간섭을 하고 경복궁에 침입해 고종을 감금, 청/일 전쟁을 일으킨 후 1차 갑오개혁을 강행한데 따른 ‘일본군 척격’운동입니다. 집결은 삼례에서 서울로 향했고,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등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세한 화력을 앞세운 일본의 개입으로 고전하다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하게 됩니다. 이후 1895년 1월 전봉준에 이어 손화중 등 동학농민 지도부 대부분이 체포되고 교수형에 처해져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납니다. 

① 사람을 죽이거나 재물을 손상하지 말 것, ②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것, ③ 일본오랑캐를 내쫓아 성도(聖道)를 밝힐 것, ④ 군사를 거느리고 입경하여 권귀(權貴)를 모두 죽일 것.

1차 봉기때 전봉준이 천명한 4개 항의 행동강령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 말들이 그때는 간절했던 행동강령이었다니... 새삼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쉽게 알아본 동학농민운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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