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부피가 크고 오래된 다이얼식 전화기를 사용하던 시절 인도에 버튼식 전화기를 들여와 히트를 시킨 장본인 ‘수닐 바르티 미탈’. 현재 인도의 통신 기업 가운데 하나인 ‘바르티 에어텔’의 최고경영자(CEO)로 있으며 이 기업은 유무선 전화, 초고속 인터넷, 디지털 TV 등을 제공한다.  

자전거 부품 회사로 시작한 미탈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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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탈은 인도 북부 펀자브의 루디아나에서 태어났으며 대학 졸업 후 아버지에게 자본금 2만루피(약 34만원)를 받아 루디아나에 자전거 부품회사를 차렸다. 회사는 생각보다 잘되었지만 더 큰 성공을 위해 공장을 팔고 뭄바이로 떠났다. 미탈은 형 라케시, 동생 라잔과 함께 무역회사를 설립해 일본 스즈키 모터스에서 휴대용 발전기를 수입해 독점 판매했다. 당시 정전이 잦았던 인도에 발전기는 필요한 물건이었기에 사업은 대박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멈춰버린 사업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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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인도 정부가 1983년 발전기 수입을 금지하고 대기업 두 곳에만 발전기 제조 허가권을 주자 미탈의 모든 일이 멈춰서고 말았다. 절망에 빠져있던 미탈은 대만에 갔다가 우연히 버튼식 전화기를 보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버튼식 전화기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다이얼 전화기만 사용하고 있었기에 미탈은 버튼식 전화기로 또 다른 기회를 찾았다.

인도에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다

[사진/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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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사업성을 알아본 미탈은 버튼식 전화기 부품을 수입한 후 조립해서 '미탈 형제들'을 뜻하는 '밋브로(Mitbrau)'라는 이름을 붙여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탈은 인도에 버튼식 전화기를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이후 독일의 지멘스와 기술 협력을 통해 인도 회사로는 처음으로 팩스와 무선 전화기 등을 만들었고 회사는 빠르게 커갔다.

정보 통신 사업에 적극 뛰어들다
미탈 회장은 1992년 인도에서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시장이 개방되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는데, 프랑스의 비방디와 컨소시엄을 이뤄 30개나 되는 경쟁사를 물리치고 델리, 뭄바이, 콜카타, 첸나이 등 인도 주요 대도시 4곳의 사업권을 모두 입찰 받았다.

통신업에만 머물지 않은 미탈의 사업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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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탈은 1995년 델리에서 ‘에어텔’이라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라이선스 비용을 내지 못해 도산하는 다른 업체들의 사업권을 사들이며 인도 주요 도시로 서비스를 넓혀갔다. 하지만 미탈은 통신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통, 금융서비스, 제조업, 소프트웨어 등으로 진출해 계속해서 그룹을 성장 시켜 나갔다.

기업은 사회와 조화하며 성장해야 한다는 소신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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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탈은 교육 분야에 있어서는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반드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200개가 넘는 학교와 도서관을 지었다. 2007년에는 인도 정부로부터 최고의 시민상인 '파드마 부산(Padma Bhushan)'을 받는 영예를 누렸고 미국 경제 전문 잡지 <포브스>는 미탈을 인도의 통신사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은 보기 드물게 때 묻지 않은 통신 재벌이라고 평가했다. 

작은 기업으로 시작해 큰 기업들을 제치고 성장을 이룬 ‘수닐 바르티 미탈’. 신사업에 도전하면서도 사회적 역할까지도 저버리지 않는 그의 성실함이 인도 시골마을 자전거 부품 공장 사장을 지금의 거대 모바일 통신 사업자로 성장시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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