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전도사 ‘칼 세이건’...화제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해설자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과학의 전도사 ‘칼 세이건’...화제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해설자 [인포그래픽_세계인물편]
  • 보도본부 | 최지민 pro
  • 승인 2020.03.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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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뉴스 심재민/디자인 최지민]

▶ 칼 세이건 (Carl Edward Sagan)
▶ 출생-사망 / 1934. 11. 09. ~ 1996.12.20.
▶ 국적 / 영국 출신의 미국인
▶ 활동분야 / 천문학, 천체물리학
▶ 주요저서 / 우주의 지적인 생명체, 코스모스, 혜성

많은 업적을 남긴 과학자로 생물의 진화과정을 다룬 ‘에덴의 용-지능의 원류를 찾아’를 집필해 197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그의 저서 ‘코스모스’는 1980년대 유명한 베스트셀러이자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돼 전 세계 5억 인구가 시청하기도 했다.

남달랐던 과학 신동...NASA와의 연으로

193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칼 에드워드 세이건. 어려서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았던 칼 세이건은 특히 SF 관련 문학을 자주 접하며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그러다 <성간비행>이라는 책을 접한 후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51년 시카고 대학에 입학한 칼 세이건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으며, 이후 관련 분야에 꾸준히 매진해 1959년 금성 탐사선 매리너 호 프로젝트에 가담한 이후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연을 맺었다.

아폴로 11호 발사 등 주요 우주 프로젝트에 참여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NASA에서 우주에 관한 연구에 동참한 칼 세이건. 그는 1969년 아폴로 11호 발사에도 관여했지만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딛던 역사적인 순간에는 병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있었던 일화로 유명하다. 이후 지금도 유명한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역량을 키워나가던 칼 세이건은 1976년 최초로 화성의 지표면 모습을 전송한 화성 탐사선 바이킹 계획에도 비중 있게 참여했다. 또한 마리너, 보이저, 갈릴레오 등 행성탐사 계획에 연구관 역할을 하던 칼 세이건은 화성 표면과 금성 대기층에 대한 연구는 물론, 외계생명 등 천체생물학에서도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제작으로 세계적 인기를 한 몸에

우주 연구에 대한 다양한 업적을 쌓아가던 칼 세이건에 당시 매체들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6년에 칼 세이건은 과학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합의했고 1980년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방송이 방영되었다. 당시 우주와 인간, 과학의 역사, 지구의 미래 등 생소했던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방송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전 세계 60개국에 방영되어 약 6억명의 시청자가 흥미롭게 이를 지켜봤다. 방송의 뜨거운 인기로 해설자로 나섰던 칼 세이건의 유명세는 더욱 높아졌고 이후 발행된 단행본 <코스모스> 역시 출간 후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로 명성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과학 분야 저술가로도 자타공인 인정을 받은 칼 세이건은 ‘에덴의 용(1978)’을 집필해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세계 평화와 자신의 신념을 지킨 강건함

노년 시기 칼 세이건은 세계 평화와 윤리, 종교적 신념을 확고히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서슴없이 행동했다. 냉전 말기인 1980년대는 미국과 소련 양측에 ‘핵’의 위험을 경고했으며, 특히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의 모순점을 피력하며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스타워즈 계획 : 날아오는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레이저나 양성자 빔 따위의 에너지 무기로 파괴하려 한 계획]

이후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낙태와 종교 같은 찬반이 뜨거운 윤리적 문제에도 관여하며 자신의 합리주의적 신념을 피력했다. 그러다 1994년 백혈병 종류의 병을 앓게 된 칼 세이건은 다양한 종교 단체의 기도도 거부하며 확고한 불가지론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도 했다. 그렇게 칼 세이건은 1996년 12월의 어느 날, 6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나는 죽는 순간 다시 살아나 나의 일부를 기억하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유작 <에필로그>에서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신념처럼 칼 세이건은 '과학의 전도사'로 불리며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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