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 디자인 최지민]

▶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 출생-사망 / 1813. 10. 10. ~ 1901. 01. 27.
▶ 국적 / 이탈리아
▶ 활동 분야 / 작곡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오페라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주세페 베르디’. 그는 오페라의 거인 또는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린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대의 오페라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베르디

베르디는 1813년에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베르디는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7살 때부터 교회에서 오르간을 배워 10살 때는 노령의 오르가니스트의 뒤를 이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음악에 재능을 보인 베르디는 부유한 상인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안토니오 바레치의 시선을 끌어 후원을 받게 된다.

베르디의 처녀작 <오베르토>

바레치는 베르디가 더 훌륭한 음악 선생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음악의 도시 밀라노로 보내고 베르디는 3년간 밀라노에 머물며 최고의 극장 일원이던 라비냐 선생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음악적으로 성숙해진 베르디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바레치의 후원으로 음악감독에 임명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밀라노에 대한 동경이 강했던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상연하기 위한 작품의 작곡에 전력을 기울여 그의 처녀작 <오베르토>가 완성되었다.

실패를 딛고 만드는 오페라마다 거둔 성공

이후 다음 작품인 오페라 <왕국의 하루>를 상연하지만 이마저 실패한 베르디는 작곡을 단념하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들의 격려로 다음 작품 <나부코>에 착수해 완성했다. 이 오페라의 성공으로 베르디는 점점 명성을 얻게 되었고 성공에 힘입어 셰익스피어 원작에 의한 <맥베스>를 비롯해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등 만드는 오페라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3대 오페라 중 하나 <라트라비아타>

베르디의 주요 작품, 3대 오페라의 하나로 꼽히며 길을 잃은 여인이라는 뜻의 <라 트라비아타>는 초연에서 실패한 바 있다. 그 시절 오페라는 주로 성경이나 역사 이야기였지만 이 작품은 현대극으로 만들었으며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가 살찐 뚱뚱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결국 베르디는 배경을 옛날로 고치고 새로운 배우를 써서 다시 무대에 올렸고 <라 트라비아타>는 대중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오페라 <아이다>와 극장적인 <레퀴엠>

1871년에는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다>를 작곡했다. <아이다>는 베르디 작풍의 장점을 집대성하고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진로를 가리킨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873년에는 문호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이 완성되었고 <레퀴엠> 중 '진노의 날'은 베르디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곡으로 웅장하고 압도적인 소리로 대중매체의 배경음악에 자주 쓰인다.

음악가를 위한 휴식의 집에서 눈을 감다

베르디는 한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오페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등 이탈리아 음악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평생 모은 돈으로 가난하고 늙은 음악가들을 위해 '음악가를 위한 휴식의 집'을 지어 밀라노시에 기증했으며 88세로 세상을 떠난 베르디는 이곳에서 영면에 들었다.

60여년 동안 작곡가로 활동하며 이외에도 〈리골레토〉,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 〈가면무도회〉, 〈돈 카를로스〉, 〈에르나니〉,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 〈루이자 밀러〉, 〈오텔로〉 등의 수많은 걸작을 남긴 ‘주세페 베르디’. 그의 작품들은 다음 세대의 관객들에게도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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