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심재민 / 디자인 최지민, 구본영 수습]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기억’은 다양한 부분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학생들의 학습, 운동선수나 가수들의 컨디션 혹은 트라우마 역시 기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생들의 기억 능률(회상률)을 향상하기 위한 ‘상태 의존적 학습’에 대한 관심이 높다.

상태 의존적 학습(기억)이란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지속적으로 유사한 정서적 물리적 환경을 제공하는 경우 이후 그 정보를 떠올릴 때 보다 잘 기억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무언가를 외울 때의 기분 및 환경과 기억해낼 때의 기분 및 환경이 비슷한 상태일 때, 기억이 더 잘되는 현상을 상태 의존적 학습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공부한 데서 시험을 보면 기억이 잘 나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연인과 데이트하던 장소에 가면 추억이 떠올라 흐뭇해지거나 슬픔에 잠기는 것도 이 상태 의존 학습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운동선수들의 경우 상태 의존 학습이 경기 결과에 미치는 여향이 커, 중요한 시합을 앞둔 경우 현지 적응 훈련을 통해 상태 의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아니 반대로 상태 의존 학습 효과를 간과 했다가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수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상태 의존적 학습은 여러 실험을 통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앨런 배들리(Alan Baddeley)와 던컨 고든(Duncan Godden)은 단어 회상 실험을 통해 상태 의존적 학습을 밝혀낸 바 있다.

이들의 실험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잠수부들에게 서로 무관한 단어 40여개를 각각 물속과 해변에서 학습하게 하였다. 그 후 최대한 많은 단어를 기억해 내야 하는 시험을 물속과 해변에서 치르게 했더니, 그 결과 단어를 학습한 장소와 시험을 치른 장소가 같을 때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조건보다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은, 기억의 환경이 같을 때의 회상률이 높아지는 ‘상태 의존적 학습’을 잘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 상태 의존적 학습이 화두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학습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태 의존적 학습이 떠오른 것. 방법은 단순하다. 상태 의존적 학습의 원리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공부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 특정한 환경을 동일하게 유지한 채 공부와 시험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은 공부방에서 지속적으로 학습을 하게 하면, 동일한 환경 속에서 학습한 부분에 대한 기억력이 높아지게 되는 원리다.

하지만 이 학습법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공부 환경과 시험 환경이 달라지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동일한 환경에서 공부와 시험을 반복하면 어느 새 기억 깊은 곳에 학습내용이 저장되어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특정 환경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기 때문에 근본적 학습법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문이다.

기억이 시작된 환경과 기억을 이끌어내는 환경이 같을 때 회상률이 높아지는 ‘상태 의존적 학습’. 이는 범죄자들의 현장 검증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상당히 잘 알려진 개념이며 실제 효과가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상태 의존적 학습을 마치 ‘학습 능률’을 올리는 뛰어난 방법처럼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상태 의존적 학습을 맹신하기보다 참고할 만한 정도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근본적 학습 능력 향상에 대한 스스로의 노력이 더 중요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