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 2000년대 초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를 품에 안은 ‘프랑수아 피노’. 명품 거인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의 인수 경쟁에서 승리하며 구찌, 이브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부셰론, 세르지오로시,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스텔라매카트니, 브리오니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명품 거인으로 변신했다. 

젊은 나이에 세운 유통회사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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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피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제재소에서 일을 돕다 가업을 물려받았다. 27살의 나이에 소시에테피노라는 이름으로 목재 유통회사를 세웠으며 이 회사가 지금 PPR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1991년 가구가전 유통업체 콩포라마 인수를 시작으로 유통업에 진출하며 프랑스 1위 백화점 프랭탕백화점 등과 구찌를 잇달아 손에 넣으며 피노-프랭탕-르두트 그룹을 만들었다. 특히 그는 사업을 키울 때 경영이 악화한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여 정상화해 돈을 벌었다. 

구찌를 손에 넣으며 명품의 거인으로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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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는 사업가보다 미술품 컬렉터로 조명을 더 받아왔지만 명품 브랜드 구찌를 손에 넣음으로써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함께 보여줬다. 구찌를 인수한 뒤 그룹 이름을 PPR로 바꾸고, 쁘렝땅백화점의 지분을 처분함으로써 그룹의 핵심 사업을 유통에서 명품으로 완전히 이동시켰다. 이로써 피노의 재산 규모가 2002년 31억달러에서 2012년 130억 달러로 10년 사이 네 배가량 늘게된다. 

양보도 없는 라이벌, 피노 VS 아르노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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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수 경쟁을 벌였던 아르노와는 부부동반 식사모임을 가질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피노가 구찌를 인수하자 서운함을 드러냈으며 피노의 경영권 인수가 발표나기 두 달 전 아르노는 14억달러를 들여 구찌 주식 34.4%를 은밀히 매수해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M&A 큰손인 아르노에게 구찌를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도메니코 데 솔레 구찌 대표이사(CEO)가 피노를 찾아갔다. 솔레는 피노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피노 역시 기꺼이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피노는 인수 전 50억 달러 이상을 구찌에 쏟아부었기에 아르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피노가 자신과 전혀 상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사업에서 둘은 양보 없는 라이벌이 되었다.

승승장구하는 피노

[사진/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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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인수 후에도 피노가 입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부셰론, 세르지오 로시, 발렌시아가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을 손에 넣으며 아르노의 속을 쓰리게 했다. PPR 그룹의 규모가 커지고 성장세가 가팔라지며 아르노의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를 위협하는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그러다 2003년 피노는 PPR 그룹의 경영권을 아들 프랑수아 앙리 피노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명품 거인의 취미 미술품 수집

[사진/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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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는 미술계에서 손에 꼽히는 20세기 미술품 컬렉터이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 몬드리안,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의 작품을 포함한 2,0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소장품 가치는 수십억 달러를 호가한다. 그는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2006년에는 개인미술관 팔라조 그라시, 2009년에는 푼타델라 도가나를 건립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도 소유하고 있다.

유통에 이어 명품 제국을 세운 ‘프랑수아 피노’. 피노와 아르노가 일적인 면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로의 라이벌이 되었기에 명품업계의 양대 산맥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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