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뉴스 조재휘/디자인 최지민]

▶ 바스쿠 다가마 (Vasco da Gama)
▶ 출생-사망 / 1460. ??. ??. ~ 1524. 12. 24.
▶ 국적 / 포르투갈
▶ 활동 분야 / 항해가, 탐험가

15~16세기 포르투갈의 항해가이자 탐험가였던 ‘바스쿠 다가마’. 서유럽에서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개척함으로써 세계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포르투갈이 강대국이 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주앙 2세의 지시를 빠르고 충실히 수행

바스쿠 다가마는 포르투갈의 남서부 알렌테주 지방에 위치한 시네스에서 지역 사령관이었던 이스테방 다가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스쿠 다가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그가 수학과 항해술을 배웠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492년 포르투갈의 주앙 2세는 포르투갈 선박에 대한 약탈 행위의 보복으로 다가마를 리스본 남쪽의 세투발 항구와 포르투갈의 최남단 알가르브 지방으로 보내 프랑스 배들을 나포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다가마는 임무를 빠르고 충실히 수행하였다.

함대를 지휘하게 된 다가마

당시 주앙 2세는 포르투갈 함대를 인도로 파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아시아로 가는 해로를 개척하고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이슬람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이 원정대의 지휘는 바스쿠 다가마의 아버지에게 맡겨졌지만 아버지가 죽자 다가마가 뒤를 이어 함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인도 항로 개척 의지의 제1차 항해

1497년 7월, 다가마는 4척의 배와 170여명의 선원을 인솔하고 리스본을 출항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의 희망봉을 돌아 1498년 5월 인도 캘리컷 항에 도착하면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동쪽 항로를 개척하게 된다. 인도에서 3개월가량 머물렀지만 당시 캘리컷 항의 통치자는 유럽인들과 그들의 상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통상교역을 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가마는 어쩔 수 없이 소량의 상품만을 싣고 1499년 9월 즈음 리스본으로 귀국했다.

탐험보다는 전투를 위한 제2차 항해

1502년 2월, 바스쿠 다가마는 20척의 배를 이끌고 인도로 향했다. 포르투갈에서는 외교적으로 무역을 할 수 없다면 무력으로 해결하라는 식으로 함대를 꾸려 보낸 것이다. 인도 도착 이후 이슬람군과 해전을 벌여서 승리했고 무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전투에서 다 가마는 병사뿐만 아니라 항구에 사는 죄 없는 많은 어부와 상인들마저 대량 학살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인도양의 제해권을 차지했으며 인도와의 독점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총독으로 부임하며 제3차 항해

포르투갈은 인도와의 독점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다가마는 업적을 인정받아 1519년 백작 지위에 올랐고 1524년 인도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인도 현지 공관의 부정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3차 항해를 떠났다. 그러나 인도 도착 후 말라리아에 걸려 코친(Cochin)에서 숨을 거두었다.

잔인한 방법으로 이룬 업적으로 비판의 의견도 적지 않은 ‘바스쿠 다가마’. 하지만 그의 활약으로 포르투갈은 인도양을 지배할 수 있었고 항로 개척을 통해 세계 모든 지역이 뱃길로 이어지는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된 사실만큼은 인정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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